삼국사기 최대의 미스터리(2개의 시나리오)

2024. 12. 9. 15:02백제, 신라, 가야, 왜

 

삼국사기 최대의 미스터리입니다.

신라 14대 이사금 유례조에 실재 역사를 기록한 삼국사기에 왠 알 수 없는 유령군대가 출현합니다.

잘 읽어보면 이서고국이 금성을 공격한 건 사실이고, 나머지 내용은 사실 반 허구 반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건 무엇을 은폐할려고 이렇게 기록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유례>
14년(서기 297) 봄 정월, 지량(智良)을 이찬으로 삼고 장흔(長昕)을 일길찬으로 삼았으며, 순선(順宣)을 사찬으로 삼았다.
이서고국(伊西古國)이 금성(金城)을 공격해 왔기에 우리 군사를 크게 일으켜 막았으나 물리칠 수가 없었다. 그런데 홀연히 이상한 병사들이 왔는데, 그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으며 그들은 모두 귀에 대나무 잎을 꽂고 있었다. 우리 군대와 함께 적을 공격하여 깨뜨렸으나 그 후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이 대나무 잎 수만 장이 죽장릉(竹長陵)에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하니, 이로 말미암아 나라 사람들이 말하기를 ‘먼저의 임금이 음병(陰兵, 신령한 비밀 군대)을 보내 전쟁을 도왔다’고 하였다.

 

먼저 나무위키에 이서고국은,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伊西面)과 화양읍 일대에 있었다. 이서소국(伊西小國), 이서고국(伊西古國)이라고도 한다.

 

청도군은 경주에서 서남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근데 삼국지 한전에 진한 12개국 중에 이저국(已柢國)이 있는데, 한자만 다르고 발음은 비슷한 것으로 보아 이 이저국이 이서국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진한 12국은 진왕 즉 백제대왕에게 신속되어 있었습니다.

 

<삼국지 한전>
그중에서 12國은 辰王에게 臣屬되어 있다.
辰王은 (그 12국의 왕을) 항상 馬韓사람으로 王을 삼아 대대로 世襲하였으며, 辰王이 (그들을) 자립해서 王이 되지 못하게 하였다.
其十二國屬辰王 辰王常用馬韓人作之 世世相繼 辰王不得自立爲王
魏略: 그들은 옮겨온 사람들이 분명하기 때문에 馬韓의 제재를 받는 것이다.

 

근데 사로국만 홀로 공격받은 것입니다.

 

이때 백제는 책계(재위 286~298) 12년(297년)으로, 책계는 재위 3~12년까지 대부분의 재위기간이 기록 공백입니다.

이 뜻은 반대로 보면 백제가 한창 잘 나가고 있다는 뜻으로, 유례(재위 284~298)와 완전한 동시대 사람입니다.

 

이제 이걸 풀기 위해선 2개의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풀어야 합니다.

왜냐 하면 어떤 것이 사실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시나리오-

제가 보기에 책계는 근초고왕에 버금가는 백제의 대왕으로, 이 책계를 유례가 건드린 대사건입니다.

 

즉 위 기록은 원래,

 

이서고국(伊西古國)이 금성(金城)을 공격해 왔기에 우리 군사를 크게 일으켜 막았으나 물리칠 수가 없었다 → 그래서 망했다 입니다.

 

이후의 문장은 그 망한 걸 감추려고 의도적으로 꾸며 지어낸 장문인 것입니다.
즉 유례 13년(296년)은 공백으로, 역시 책계의 동년 기록도 공백, 이 때 백제대왕 책계의 심기를 건드리는 어떤 일이 있었고 그래서 백제와 이서고국은 함께 금성을 공격, 유례를 사로잡아 책계에게 죽임을 당한 사건을 저렇게 은폐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근데 본문에서 이서고국만 나오지만 은폐하려고 대표적으로 이서고국 하나만 쓴 것이며, 실상은 백제+이서고국+소국들의 수만 대군 연합세력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백제(辰)의 힘입니다.

 

반면 사로국은, 8대 아달라 때(167년)부터 이미 3만 대군을 보유한 인구대국이고 군사강국입니다.

이에 대한 설명은 다른 글 '眞혁거세'에 나오니 참고 바랍니다.

 

<유례>
14년(297) 가을, 백제 외+이서고국 연합군 사로국 공격
15년(298) 봄 2월, 금성 함락
동년 봄 3월~여름 무렵, 유례 죽음
동년 가을, 백제 외+이서고국 연합군 회군
동년 겨울 12월, 유례의 죽음 발표

 

296년 사로국 유례는 백제대왕 책계의 심기를 건드리는 무엇을 함
297년 봄 정월, 지량(智良)을 이찬으로 삼고 장흔(長昕)을 일길찬으로 삼았으며, 순선(順宣)을 사찬으로 삼았다 → 백제에 대한 전쟁준비
동년 가을, 백제대군+이서고국 외 연합군 사로국 군대 격파 → 수만 대군 회전
동년 겨울, 일단 회군 → 날씨 문제?

298년 봄 2월, 서울에 안개가 짙게 끼어 사람을 알아볼 수가 없었는데 닷새 만에 걷혔다 → 다시 연합군 재공략, 이미 사로국 군대는 격파 당해 닷새만에 금성 함락, 유례 사로잡힘
동년 여름, 유례 한성으로 압송, 조리돌림 당한 후 처형(사지절단형?) → 3족 모두 처형, 다음 임금 조분의 손자 기림(유례의 조카)

동년 가을 9월, 백제에 외적 침략 → 책계 전사
동년 겨울 12월, (유례) 임금이 돌아가셨다 → 사로국, 모두에게 알림

 

공교롭게도 책계는 이 해 가을 9월에 외적을 막다가 전사하고, 맏아들 분서가 뒤를 잇습니다.
이때 훗날의 김춘추처럼 사로국의 누군가가 중국에 원군을 요청한 걸로 보입니다.


298년의 중국왕조는 서진으로, 아래 지도를 보면 평안도가 이들의 영토였던 걸로 보아 "맥인과 합세하여 침범했다"는 기록이 신빙성 있어 보입니다.

출처: 나무위키

 

비록 전사지만 아버지 죽음의 내막을 알게 되어 그 한을 갚아야 하기에 맏아들 분서는 사로국 복수전에 나서는데, 그게 분서와 기림의 겹치는 공백 기간에 벌어진 일로 보여집니다.
외적의 침략을 방어하고 몇 년 기다려 힘을 축적한 후이니 301~302년으로 추정합니다.

 

결과는 분서의 성격이 너그러웠다는 걸로 보아 용서한 걸로 보여집니다.

<분서>
분서왕(汾西王)은 책계왕(責稽王)의 맏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너그러웠고 외모가 뛰어났기에, 임금이 사랑하여 옆을 떠나지 않게 하였다. 책계왕이 돌아가시자 계승하여 왕위에 올랐다.


-두 번째 시나리오-

두 번째 역시 아래를 근거로 합니다.

 

<삼국지 한전>
그중에서 12國은 辰王에게 臣屬되어 있다.
辰王은 (그 12국의 왕을) 항상 馬韓사람으로 王을 삼아 대대로 世襲하였으며, 辰王이 (그들을) 자립해서 王이 되지 못하게 하였다.
其十二國屬辰王 辰王常用馬韓人作之 世世相繼 辰王不得自立爲王
魏略: 그들은 옮겨온 사람들이 분명하기 때문에 馬韓의 제재를 받는 것이다.

 

이서고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세력들이 사로국을 공격하자, 유례가 백제대왕 즉 책계에게 구원을 요청한 것입니다.

책계는 백제 주변의 소국들을 규합해 연합군을 구성, 금성으로 수만의 원군을 보냅니다.

 

유례조를 다시 보겠습니다.

<유례>
14년(서기 297) 봄 정월, 지량(智良)을 이찬으로 삼고 장흔(長昕)을 일길찬으로 삼았으며, 순선(順宣)을 사찬으로 삼았다.
이서고국(伊西古國)이 금성(金城)을 공격해 왔기에 우리 군사를 크게 일으켜 막았으나 물리칠 수가 없었다. 그런데 홀연히 이상한 병사들이 왔는데, 그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으며 그들은 모두 귀에 대나무 잎을 꽂고 있었다. 우리 군대와 함께 적을 공격하여 깨뜨렸으나 그 후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이 대나무 잎 수만 장이 죽장릉(竹長陵)에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하니, 이로 말미암아 나라 사람들이 말하기를 ‘먼저의 임금이 음병(陰兵, 신령한 비밀 군대)을 보내 전쟁을 도왔다’고 하였다.

 

즉 본문에 나오는 이상한 병사들이 곧 백제의 연합군인데, 이들이 이서고국의 연합군을 쳐부순 것입니다.

이 기록은 훗날 신라가 삼한일통 후 이렇게 은폐한 것입니다.

 

근데 대나무 잎 수만 장이 죽장릉에 쌓여 있다고 하니 이는 유례가 심상치 않은 일을 당한 걸 의미합니다.

보다시피 첫 번째 시나리오가 끝까지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그래서 저는 첫 번째 시나리오를 지지합니다.

 

하지만 결국 어떤 시나리오든 당시 백제가 삼한의 맹주라는 건 변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