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성(實聖) 1(담덕의 참모)

2024. 12. 9. 03:27백제, 신라, 가야, 왜

 

광개토왕 비문 해석을 위해 참고로 신라 실성조를 봤는데, 이 분 뭐지? 하는 감이 확 왔습니다.

가히 제갈공명급입니다.

광개토왕이 그렇게 무패였던 이유가 바로 실성이 옆에 있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에 대해서 차근차근 논해 보겠습니다.

 

우린 지금 실성의 나이를 모릅니다.
그래서 먼저 실성(재위 402~417)의 나이부터 보면, 

 

<흘해>
28년(337) 봄 2월, 백제에 사신 보냄(흘해 딸+비류 아들 계? 혼인)
34년(344) 봄 2월, 왜에서 사신 보냄(흘해 딸 이미 출가하여 거절)
36년(345) 봄 2월, 왜왕이 국서 보냄(국교 단절)

 

<근초고>
원년(346) 가을 7월, 왜국에서 돌아와 백제왕 즉위
2년(347) 봄 정월, 天地에 제사 지냄
21년(366) 봄 3월, 신라에 사신 보냄(태자 근구수+내물 딸? 혼인)
23년(368) 봄 3월, 신라에 좋은 말 2필 보냄

 

여기서 백제왕이 태자가 없을 때 차기 왕통 1순위가 왜왕이라는 저의 주장대로라면, 

흘해 34년에 왜에서 혼인을 위한 사신을 보낸 이가, 바로 젊은 근초고왕입니다.
이때 그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의 나이로 추정됩니다.

참고로 근초고왕이 왜 열도에 있는지는 저의 전 글들을 보십시오.

(왜왕무는 동성왕이다, 왜왕무는 무령왕이다 참고)

 

346년에 백제왕 즉위 시 대략 20세로 추정하면 366년은 40세이고, 이때 신라에 사신을 보낸 이유가 태자(근구수)의 혼인 때문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때 근구수의 나이를 대략 20세 전후로 추정할 수 있고, 내물의 딸 역시 15~20세로 추정됩니다.

이 뜻은 내물의 나이가 366년에 적어도 40세란 뜻입니다.

 

그럼 재위 47년(402)에 적어도 76세에 죽었단 뜻이 되고, 29세에 신라왕에 즉위한 겁니다.

 

근데 내물 45년(400) 겨울 10월의 심상치 않은 기사로, 이때 죽은 것으로 추정합니다.(향년 74세)

<내물>
45년(400) 가을 8월, 혜성이 동쪽에 나타났다.
                 겨울 10월, 임금이 타던 왕성의 말이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울었다.

 

그럼 다시 돌아와서, 

<내물>
36년(391) 백잔+왜, 신라 격파해 (다시) 백제의 신민이 됨(내물 65세?)
37년(392) 고구려에 실성을 볼모로 보냄(구원 요청)
38년(393) 여름 5월, 왜가 금성 포위함(백제 아신왕의 명령)
39년(394) 가을 7월, 백제가 고구려 침략
41년(396) 고구려 광개토왕이 백잔 토벌함
45년(400) 겨울 10월, 내물 사망(74세)
46년(401) 가을 7월, 고구려에 볼모로 갔던 실성이 돌아옴

 

<실성>
원년(402) 봄 3월, 왜국과 우호를 맺고, 내물왕의 아들 미사흔(未斯欣)을 볼모로 보냄
16년(417) 여름 5월, 조카 눌지에 의해 살해됨

 

실성이 조카 미사흔을 왜국에 혼인시킨 게 아니라면, 실성 원년에 실성은 태자를 (혼인성사 유무를 떠나) 왜국과 혼인시킨 게 됩니다.

즉 이 때 실성은 (태자를 혼인시키려면) 적어도 40세란 뜻이 되고, 이 계산에 의하면 362년생이고 417년 55세에 살해됩니다.

 

근데 황남대총에서 나온 유골의 주인공이 실성이라 가정하면, 그 뼈의 나이가 60세 전후라고 하니 362 - 5 = 357년생이 됩니다.

 

그럼 357년에 태어났고, 392년(35세)에 고구려에 볼모로 가서 10대 후~20대 초반의 담덕과 만나는 겁니다.

 

이제 담덕의 참모, 실성의 활약이 고구려 대백제 전에서 펼쳐지니 그 나이가 대략 30대 초중반인 것입니다.

 

이쯤에서 감 왔나요?
볼모의 나이가 35세랍니다.

 

이건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담덕이 실성을 볼모란 명목으로 초빙한 겁니다.

 

이제 담덕의 나이를 볼까요?

<고국양>
3년(386) 봄 정월, 임금이 왕자 담덕(談德)을 태자로 삼음

 

보통 성년식을 하며 태자로 삼는다면, 이때 담덕의 나이는 15세로 추정합니다.

 

그럼 371년생이 되고, 392년에 실성이 왔으니 21세에 실성을 만난 겁니다.

또 413년에 죽었으니 그때 나이 42세입니다.

 

이게 제가 추측한 나이지만, 알고 보니 광개토왕 능비에 나이가 나옵니다.

 

삼국사기의 기록과 조금 다른데, 능비에는 18세에 왕위에 오르고 39세에 죽었다고 나옵니다.

 

그럼 391년에 즉위했으니 391 - 18 = 373년생입니다.

방금 추측한 나이 371년생이랑 2살 차이밖에 안 납니다.

 

그럼 392년에, 30대 초중반의 실성과 19살의 담덕이 만납니다.

 

즉 392년 봄 정월 둘은 처음 대면하고, 이 해 5월 고국양왕이 죽고, 담덕이 바로 왕위에 오른 것입니다.

 

근데 이 해 가을 7월에 담덕이 가장 처음 한 일이, 백제의 10개 성 공략이고 겨울 10월에는 관미성을 공략합니다.

 

이거에 대해서 다들 어떻게 생각하나요?

19살의 담덕이 왕이 된 후, 처음 한 일이 백제의 10개 성 공략이랍니다.
이게 말이 되나요?

이건 담덕 주변에 누군가 훌륭한 참모가 있기에 가능한 게 아닐까요?

백제에 대해서 고구려보다 신라가 더 잘 알 거 아닌가요.

 

그러니 누구일까요?

실성인 겁니다.

 

그럼 이제 실성의 키에 대해서 입니다.
삼국사기에 실성의 키는 7척5촌(184cm)이랍니다.

 

당시치곤 엄청 큰 키입니다. 
황남대총의 시신(금동관~신발)이 181cm니까 뼈가 세월 감에 따라 작아지는 걸 감안하면, 생전 184cm가 맞을 겁니다.

 

근데 담덕은 "태어나면서부터 체격이 크고, 생각이 대범하였다" 하고, 실성은 "184cm에 명석하고 사리에 통달하여 앞일을 내다보는 식견이 있었다" 하니 둘은 너무 잘 맞았던 겁니다.

 

삼국사기에 "내물왕(奈勿王)이 돌아가셨는데 그 아들이 아직 어렸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실성을 세워 왕위를 잇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내물이 재위 47년이나 되는데 아들이 어리다고요?

 

이건 나이 문제가 아니라 왕이 될 만한 그릇이 아니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왜냐 하면 진흥왕은 7살에도 왕위에 올랐거든요.

 

그래서 내물의 아들 대신 고구려에서 잘 나가는(?) 실성을 모셔와 왕위를 잇게 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