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8. 09:15ㆍ백제, 신라, 가야, 왜
전 글에 왜왕 무가 동성이었다고 했지만, 후보 2명 중 또 하나의 인물이 사마, 즉 무령이었습니다.
무령이 당시 열도에 있었다면?
- 武 - 무령, 461년생, 열도로 가는 중 출생
478년 열도에서 왜왕 작위받음, 17세
501년 돌아와 백제왕 즉위, 40세
523년 백제에서 사망, 62세
이에 따르면 무령이 열도에서 왜왕 작위를 받은 나이가 17살입니다.
501년에 백제에서 백제왕으로 즉위했으니 478년에 왜왕 작위를 받고 501년 40세까지 열도에 살았다고 봐야 합니다.
즉 477년 16살에 부형이 갑자기 죽으니 사춘기의 어린 왕이 피눈물을 흘리며 중국황제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세번째 의문이 생깁니다(의문 1과 2는 왜왕무 동성설에서 해명했음).
백제의 개로는 왜 백제왕의 작위만 받았고, 왜왕 무는 어째서 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의 육국 작위를 요구한 이유가 뭐냐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백제와 왜의 관계, 즉 한일고대사의 미스터리를 푸는 열쇠입니다.
아시는 바대로 당시 백제는 한강 이북 즉 황해도, 평안도, 요동의 고구려와 대치 상태에서 함경도의 옥저, 강원도의 동예가 있어 절충 역할을 했습니다.
한강 이남에는 경기도, 충청도, 전북의 마한 땅의 백제, 전남의 침미다례(新彌多離), 경북의 신라, 경남의 가라가 있었습니다.
근데 우리는 고구려의 영토를 말할 때, 옥저와 동예까지 모두 포함하여 고구려라 말합니다.
고구려가 이들을 완전병합 했는지 아니면 자치를 하게끔 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고대국가에 완전병합, 즉 조선시대처럼 관리를 파견해 왕이 직접 통치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왜냐 하면 그건 과거제도를 도입한 이후의 고려시대에나 가능했지만, 그것도 불완전한 것이었지요.
즉 당시 삼국시대는 부족이든 뭐가 됐든 연맹체였기에 고구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고구려는 그 안에 적어도 남북 옥저와 동예, 읍루, 부여, 선비 등 많은 부족 연맹체였습니다.
반면 백제는 한반도 중부에서 이남의 신라, 여러 가야 제국, 침미다례 등을 거느린 맹주였습니다.
훗날 속국 신라의 뒤통수를 맞아 망했지만요.
辰을 이어받은 백제의 영토, 즉 직·간접 통치영역은 한강 이남 전부였던 것입니다.
이걸 어떻게 통치했냐구요?
한국식 봉건제, 즉 담로제로 통치했습니다.
그 근거는 이것입니다.
<삼국지 한전>
그중에서 12國은 辰王에게 臣屬되어 있다.
辰王은 (그 12국의 왕을) 항상 馬韓사람으로 王을 삼아 대대로 世襲하였으며, 辰王이 (그들을) 자립해서 王이 되지 못하게 하였다.
其十二國屬辰王 辰王常用馬韓人作之 世世相繼 辰王不得自立爲王
魏略: 그들은 옮겨온 사람들이 분명하기 때문에 馬韓의 제재를 받는 것이다.
이게 역사의 진실이고, 그래서 개로왕은 백제왕의 작위만 받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 백제대왕은 하나의 나라, 백제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럼 왜왕은 뭐냐?
고구려를 주적으로 둔 당시에 백제왕과 태자가 모두 전사하거나 죽었을 때 등의 국가적 위급상황으로부터, 동생 혹은 아들인 왜왕이 대신 부재중의 백제대왕의 권한을 갖고 전시상황을 지휘하려고 한 타계책이었던 것입니다.
비록 형식상, 명목상의 육국 칠국 제군사 왜왕이지만, 중국황제의 인정하에 열도는 물론 한반도 남부 전체에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가지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즉 이렇게 먼저 권한을 가져야 한반도 포함, 수많은 열도 내의 소국들의 수장을 이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한일고대사의 비밀입니다.
즉 백제대왕이 이들 수장들의 임명권을 가지고 있던 겁니다.
신라는 삼한일통 후 이 기록들을 감추려고 삭제했고, 일본도 백제의 지배를 받은 이 기록들을 축소, 삭제, 날조했던 겁니다.
원래의 옛 사료(삼한고기)에는 이런 모든 기록들이 있었지만, 백제멸망 후 신라왕이 백제대왕의 위상을 잇고 나서 기록의 축소, 삭제, 날조를 하고 신라 위주로 편집한 것입니다.
그걸 고려 초에 재편집한 것이 舊삼국사이고, 고려 중기 그걸 다시 재편집한 것이 삼국사기입니다.
이러니 천년 동안 우리가 알려고 해야 알 수가 없던 겁니다.
근데 그걸 풀려면 비밀의 열쇠(삼국지 한전에 있는 핵심문장)가 있어야 풀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 문장을 오역해서 풀 수가 없던 겁니다.
비밀의 열쇠, 그게 없으면 이건 영원히 풀 수 없습니다.
백제대왕의 신라왕 임명권은 박→석→김이 좋은 예로 들 수 있고, 다시 말하지만 일본서기는 그걸 숨기려고 날조한 것입니다.
이로써 삼국 초기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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