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8. 05:34ㆍ백제, 신라, 가야, 왜
삼국사기의 원래 책명은 삼국사라고 합니다.
이 삼국사는 舊삼국사라는 책을 보고 편찬했다고 합니다.
신라한테 불리한 기록은 모두 삭제하고, 백제한테 유리한 기록도 모두 삭제했습니다.
한반도 삼국의 정통은 백제인데, 만약 백제가 끝까지 살아남아 삼한일통했다면 삼국사의 기록은 삭제가 없었을 겁니다.
광개토왕과 장수왕이 남벌하지 않았다면 백제는 삼한일통했을 겁니다.
왕건이 아닌 견훤이 삼한일통했다면 삼국사의 기록은 지금과는 훨씬 달랐을 것입니다.
그럼 신라가 그토록 감추려고 한 것이 과연 무엇인가?
- 첫째, 백제대왕의 명을 받아 임금에 올랐다는 것.
그래서 신라 초기 임금들의 계보가 모조리 이상한 것임. - 둘째, 한반도 남부의 사람들은 삼한인(야요이인)이라는 것.
그래서 삼한에 관한 기록을 모두 삭제한 것임. - 셋째, 신라는 백제의 속민이고 백제는 삼한의 맹주라는 것.
그래서 삼국 본기의 기록들이 죄다 부실한 것임.
이 백제를 칠려고 신라는 북방의 고구려를 끌어들여 백제의 힘을 빼고 결국 당나라를 끌어들여 멸망시킨 겁니다.
<벌휴>
벌휴 이사금(伐休尼師今)[또는 발휘(發暉)라고도 한다.]이 왕위에 올랐다. 성은 석(昔)씨로 탈해왕(脫解王)의 아들인 각간 구추(仇鄒)의 아들이다.
2년(서기 185) 봄 정월, 몸소 시조묘에 제사 지내고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2월, 파진찬 구도(仇道)와 일길찬 구수혜(仇須兮)를 좌우군주(左右軍主)로 삼아 소문국(召文國)을 정벌하였다.
이건 누가 봐도 성이 석씨가 아니라 구씨입니다.
즉 구발휘가 본명으로 아버지가 구추, 삼촌 혹은 동생이 구도, 구수혜인 것입니다.
이름에서 말갈의 느낌이 나는 걸로 보아 이때 사로국은 말갈의 침략으로 멸망해 구씨가 왕위를 이었거나 백제대왕의 명으로 왕위를 이었다고 봐야 합니다.
이때의 진왕은 초고대왕으로 재위 6년부터 20년까지 기록이 삭제되어 공백입니다.
그 6~20년의 시기가 구발휘가 즉위하는 시기와 겹치니 삭제된 것입니다.
참고) 초고왕은 구태로, 백제를 건국한 고이의 조부 혹은 아버지
근데 더욱 소름인 것이, 고이왕은 구태의 아들 혹은 손자로, 나이를 역산하면 구태의 연대가 이 구발휘와 비슷한 시기입니다.
구태와 구추는 형제인 걸까요?
왜 구씨를 연관 없는 석탈해한테 끼워 맞춘 것일까요?
이런 식의 기록 삭제가 삼국사기엔 수두룩 합니다.
<벌휴>
벌휴 이사금(伐休尼師今)[또는 발휘(發暉)라고도 한다.]이 왕위에 올랐다. 성은 석(昔)씨로 탈해왕(脫解王)의 아들인 각간 구추(仇鄒)의 아들이다. 어머니의 성은 김씨로 지진내례부인(只珍內禮夫人)이다. 아달라왕(阿達羅王)이 죽고 아들이 없었기에 나라 사람들이 그를 임금으로 세웠다. 임금은 바람과 구름을 보고 점을 쳐서 홍수와 가뭄, 그리고 그 해의 풍년과 흉년을 미리 알았으며, 또한 사람됨이 사악한지 정직한지를 알았으므로 사람들이 그를 성인이라 일컬었다.
앞서 말했듯이 신라 벌휴(재위 184~196)와 백제 초고(재위 166~214)는 시기가 겹치는 동시대 사람들입니다.
즉 저의 견해대로 라면, 벌휴는 아달라가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백제대왕의 명에 의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 근거는 이렇습니다.
백제 건국시조 중 하나라 일컫는 구태는, 2세기말 부여의 위구태와 혼동되어 중국사서에 기록되었듯이 구태 역시 2세기말의 인물로 봐야 합니다.
그럼 신라 벌휴와 백제 초고와 동시대 사람으로, 백제본기에 구태의 역사는 없는 걸로 보아 초고가 바로 구태인 것입니다.
그럼 그 후손은, 앞서 주장한 대로 고이대왕이며 나이를 역산해 추정한 바, 고이는 구태의 아들이나 손자가 되겠습니다.
仇씨는 나무위키에 이렇게 나옵니다.
"창원 구씨(昌原 具氏)는 경상남도 창원시를 본관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성씨이다. 원래는 仇씨였는데, 정조 15년(1791) 임금의 명으로 具씨로 바뀌었다".
구태와 구추는 동시대 인물이며, 구태는 백제, 구추는 신라와 연관되는 인물로 그 후손은 이렇게 각각 동시대 사람들입니다.
- 백제> 구태(초고) → 구수(구태의 맏아들) → 고이(구이?, 구태의 친동생)
- 신라> 구추(구태의 동생?) → 구발휘(벌휴, 구추의 아들), 구도, 구수혜
근데 구태가 2세기말 사람이라면 초고(재위 166~214)의 시대이니 초고가 구태가 아닐까 생각하게끔 만듭니다.
그도 그럴 것이 초고의 맏아들인 구수(仇首)도 仇자가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실질적인 백제건국은 초고(구태)라고 봐야 합니다.
즉 비류온조는 목지국(한성)에서 辰을 이어만 받았고, 사실 이들이 북방에서 내려와 어떻게 나라를 세울 역량이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즉 백제를 건국한 게 아니라 목지국을 기습해 辰을 이어만 받았다고 하는 게 더욱 납득이 가고, 온조조에 또 그렇게 나옵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온조편에서 하겠습니다.
암튼 온조왕통을 이은 건 초고이고, 이가 곧 구태인 것입니다. 이 초고의 아들 혹은 손자인 고이가 백제를 건국하게 됩니다.
2탄으로 이어집니다.
PS) 분석·탐구를 진행하니 고이는 우씨인 듯합니다(역성쿠데타).
삼국사기는 고이가 구태의 친동생이라 하는데 역산해 보면 친동생이 될 수가 없고, 구수의 맏아들 사반이 어리다는 이유로 왕위에 오른 것이 미심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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