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8. 03:28ㆍ백제, 신라, 가야, 왜
무령왕의 인물화상경은 알고 보니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것이 아니라 일본 와카야마현 스다하치만 신사에 보관돼 있던 게 발견된 거라고 합니다.
근데 명문의 해석이 아직까지도 분분합니다.
이에 비록 과문하지만 제가 한번 해석해 보겠습니다.
- A, 기존은 이렇게 봅니다.
癸未年八月日十大王年?(?)弟王在意柴沙加宮時斯麻念長奉(?)遣開中費直穢人今州利二人?取白上同二百旱作此竟 - B, 최근 사학계의 연구결과로 이렇게 봅니다.
未年八月日十大王年?(?)弟王在意柴沙加宮時斯麻念長寿(?)遣開中費直穢人今州利二人?取白上同二百旱作此竟矣
먼저 계미년인지 미년인지 이게 관건인가 합니다.
근데 기존의 명문 전체 해석을 봤을 때, 저는 사마왕이라고 하지 않고 사마라고 한 것이 가장 의문입니다.
이 뜻은, 사마가 무령왕이 되기 전에 만든 것입니다.
그렇다면 501년이 백제왕 즉위년이니 계미년(503)은 아닌 것입니다.
그럼 B의 미년은 479년이라고 하니 이 해는 공교롭게도 동성왕이 즉위한 해입니다.
동성왕이 443년생으로 보면 이렇게 됩니다.
- 동성 - 443년생
479년 12월? 백제왕 즉위(36살, 8월 거울제작) - 사마 - 461년생
479년 18살
<나의 해석>
미년(479년) 8월 10일 대왕년에, xx왕(동성왕)이 오시사카궁(오사카궁)에 있을 때, 사마가 (동성왕의) 장수를 염원하다. 귀중비직과 예인 금주리 2인 등을 파견해 좋은 구리 200한으로 이 거울을 만들었다.
未年八月日十大王年?(?)弟王在意柴沙加宮時斯麻念長寿(?)遣開中費直穢人今州利二人?取白上同二百旱作此竟矣
이에 따르면 백제에 있는 사마가 왜왕으로 있는 형에게 장수를 기원하며 보낸 선물로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합니다.
동성왕은 백제왕 즉위 전, 479년 8월에 오사카궁에 있었던 걸로 보이며, 귀중비직과 금주리 등을 왜로 파견해 거울을 만든 것이었습니다.
참고로 와카야마현은 오사카 바로 근처입니다.
xx왕이 백제왕이 되기 전 아직 열도에 있을 때 장수기원의 명목으로 동경을 선물했다는 것은, 18살의 사마가 xx왕에게 잘 보이려고 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즉 사마는 xx왕이 백제의 삼근왕 다음으로 차기 백제왕이 되리라는 걸 알았다는 뜻입니다.
혹 사마가 삼근왕을 암살한 것은 아닐까요?
암살한 후 다음 백제왕이 되는 1순위의 xx왕을 맞아들였다는 게 저의 추측입니다.
여기엔 뭔가 정치적 내막이 있어 보입니다.
근데 이걸 長奉으로 해석하면 문맥이 안 맞습니다.
백제에 있는 사마가 열도에 있는 형(생물학적 사촌)을 오래 섬기길 바란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長寿로 해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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