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초로 밝히는 야마토(大和)의 미스터리

2025. 6. 5. 07:27백제, 신라, 가야, 왜

 
 
이제 고이대왕 편을 쓸 차례지만, 최근 생각이 바껴 야마토(大和)에 대해 써보겠습니다.(갈 길이 멀다!)
감히 야마토(大和)의 모든 것을 사상 최초로 밝힙니다.
좀 복잡할 수 있으니 집중해 읽으세요.
 
먼저 倭의 호칭부터 보겠습니다.
한자사전에는 왜를 '왜국 왜'라고 나옵니다.
따로 명확한 뜻이 없다는 겁니다.
본래 이 왜라는 뜻은 '키 작을 왜'로 알고 있습니다.(→ 왜소)
옛날 중국인이 열도 사람들의 키 작은 걸 보고 왜인이라고 한 겁니다.
 
그럼 이 왜는 고대일본인이 스스로 칭한 것이 아닌, 중국(漢?) 혹은 우리 三韓에서 칭한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중국이 유력)
중요한 건 그들이 스스로 칭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예나 지금이나 일본인들은 왜를 '와'라고 발음하고, 혹은 '야마토'라고도 읽습니다.
倭 = 와, 야마토
 
그럼 대화(大和)는 어떻게 해서 야마토라고 읽게 된 걸까요?
 
<왜나라 - 나무위키>
일본에서는 전통적으로 일본인을 가리키던 말인 왜(倭)라는 글자의 비하적인 의미를 희석하기 위해 이를 일본어로 발음이 '와'로 같은 '화'(和) 자로 바꾸고 앞에 '대'(大)를 붙여서 '大和'를 국명으로 하였다. 그리고 이를 일본 내에서 사용하던 국명인 야마토(やまと)와 연결시켜 '大和'라고 쓰고 やまと(야마토)라고 읽었다.
 
↑ 보시는 바대로 지금 학계든 아니든 어느 곳에서도 대화(大和)가 어떻게 해서 야마토인지 모릅니다.
그저 그냥 '연결해서 그렇게 읽었다'라고만 아는 겁니다.
이 미스터리를 제가 풀어보겠습니다.(사상 최초)
 
원래 大和는 '다이와'라고 읽어야 합니다.
근데 이상하게 야마토로 읽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삼국지 왜전에 다이와가 나옵니다.
 
<삼국지 왜전>
나라마다 시장이 있어 교역하는데 대왜(大倭)가 이를 감독한다.
國有市, 交易有無, 使大倭監之
대왜 = 비미호의 야마타이국
 
이 대왜는 또 야마토로 읽습니다.
대왜왕 = 야마토왕
大倭 = 다이와, 야마토
 
왜도 야마토로 읽고 대왜도 야마토로 읽습니다.
이거 왜 그런지 생각해 봤나요?
여기엔 아주 중요한, 고대일본의 미스터리를 푸는 열쇠가 숨겨있습니다.
 
단순히 미스터리 정도가 아닌 엄청난 정도라고 보면 됩니다.
즉 고대일본의 미스터리를 풀려면 이 야마토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옛날 어느 시대에 누군가 倭라는 글자가 싫어서 음이 같은 다른 한자를 썼습니다.
그게 일본어 발음 와(和)입니다.
倭 → 和
 
그럼 어느 시대에 대체 누가 왜를 화(和)로 바꾼 걸까요?
이는 어떤 권력자가 있어 "倭를 앞으로는 和로 바꿔 써라"고 했다고 봐야 합니다.

예: 倭식 → 和식


아니나 다를까 그는 일본사에서 우리가 비교적 잘 아는 인물입니다.
바로 쇼토쿠 태자입니다.(聖徳太子, 생몰 574~621년, 아스카 시대 초기)
 
<쇼토쿠 태자 - 위키백과>
쇼토쿠 태자(일본어: 聖徳太子, 574년 2월 7일 ~ 622년 4월 8일(일본서기 - 621년 2월 5일설 있음))는 일본 아스카 시대의 왕족이자 정치가였던 우마야도노 미코(厩戸皇子) 또는 우마야도 왕(厩戸王)에 대한 후세의 호칭이다. 요메이 천황의 장남이고 어머니는 긴메이 천황의 딸 아나호베노하시히토노 히메미코(穴穂部間人皇女)이다.
아스카 문화의 중심 인물로서 스이코 천황의 치세에서 섭정(攝政)을 맡아 소가노 우마코(蘇我馬子)와 협력하여 정치를 행했다. 12계(十二階)의 관위와 17개조 헌법을 제정하는 등 일본 정치체제를 확립한 인물이었다. 또한 독실한 불교 신자로서 일본에 불교를 보급시켜 융성시킨 인물이었다. 실존이 불분명하며 일본에 불교를 보급시키러 간 백제의 아좌태자가 쇼토쿠 태자상으로 나타났다는 설이 있다.
 
<쇼토쿠 태자 - 나무위키>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 스이코 천황의 치세에 활약한 야마토 정권의 섭정이자 정치가이다. 일반적으로 고대 일본의 정치체제를 확립하고 아스카 시대를 연 인물로 여겨지나 현대 사학계에서는 업적이 불명확하다고 여긴다.
 
쇼토쿠 태자에 대해 구글링해 보면, 일본인의 정체성 확립에 지대한 역할을 했는데, 그 중심에 이 和가 있습니다.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편'에도 잘 설명돼 있는 걸로 기억합니다.
 
<스이코(推古) - 일본서기>
12년(604년) 여름 4월 병인삭 무진(3일)에 황태자가 직접 처음으로 헌법 17조(憲法十七條)를 만들었다.
첫 번째, 화합을 귀하게 여기고, 거슬리지 않는 것을 근본으로 삼아라.
夏四月丙寅朔戊辰, 皇太子親肇作憲法十七條. 一曰, 以爲貴, 無忤爲宗.
 

참고로 이 쇼토쿠 태자는 최근 일본 사학계에서 실존인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설도 존재합니다.

차후 하나씩 풀어보겠습니다.
 
근데 '야마토'는 어디에서 온 걸까요?
일본 고대사의 시대구분은, 조몬 → 야요이 → 고훈 → 아스카 → 나라 → 헤이안에서 가마쿠라로 넘어갑니다.
이상하게 익히 알려진 야마토시대는 여기에 없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원래는 있었는데 어느 시기에 야마토시대를 없앤 겁니다.
 
아니 고대일본 하면 야마토인데 누군가 이 야마토시대의 명칭을 없앴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분명 뭔가 비밀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비밀은 아래 쭉 설명 이어집니다.
 
<야마토시대 - 위키백과>
야마토시대(大和時代)는 나라현의 아스카촌을 중심으로 일본을 다스리던 국가 형성, 확립의 시대(250년~710년)이다. 고훈 시대와 아스카 시대를 합해서 일컫는다. 아직 일본이라는 국명을 사용하진 않았으며, 한국과 중국에서는 왜(倭)라고 불렸다.
 
즉 고훈시대와 아스카시대는 확실히 야마토시대라고 합니다.
그럼 왜 나라시대는 야마토시대가 아닐까요?
 
<나라시대 - 나무위키>
나라 시대(奈良時代)는 일본의 시대 구분 중의 하나이다. 서기 710년에서 794년 간의 기간이다.
 
서기 710년부터는 야마토시대가 아니라는 겁니다.
알고보니 겐메이 천황 때 도읍을 후지와라쿄에서 헤이조쿄로 이전한 이유 때문입니다.
즉 헤이조쿄로 도읍을 이전한 이후부터 야마토시대가 아닌 나라시대입니다.
 
<겐메이 - 나무위키>
43대 천황이자, 다섯 번째 여성 천황이다.
이름은 아헤(阿閇)이다. 아스카 시대 마지막 여성 천황이자 나라 시대 초대 여성 천황이다.
덴지 덴노와 소가노 메이노이라쓰메(蘇我姪娘)의 딸로, 이종사촌이자 이복언니인 지토 덴노의 아들 구사카베 황자와 결혼했다.
와도 3년(710년) 3월 10일(4월 13일)에 후지와라쿄(藤原京)에서 헤이조쿄(平城京)로 천도했다. 이때 좌대신(左大臣) 이시카와마로(石上麻呂)를 후지와라쿄의 관리자로 남겨두었으므로, 우대신이었던 후지와라노 후히토가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아니 도읍을 이전했는데 왜 시대의 명칭을 변경 한거지?
여기엔 시대의 명칭을 변경할 정도로 중요한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저는 야마토시대에 관심이 있어서 이 글을 쓰는 겁니다.(백제와 관련 있기에)
근데 야마토시대가 끝난 직후 이어지는 나라시대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도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야마토시대를 알기 위한 참고가 되기 때문입니다.
즉 입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함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스카시대 말에서 나라시대 초에는 많은 정치제도 변화가 있었습니다.(개혁이 아님)
즉 아스카시대 말기 무렵 직전까지는 미개, 야만의 시대였다가 이때부터 급격히 문화국이 됩니다.
단순한 문화국이 아닌 과장 섞어 한·중을 뛰어넘는 문화국이라고 하면 이해 되실까요?
아니 이때 어떤 일들이 있었고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겐메이의 아버지인 덴지, 이 분이 무척 중요한 인물입니다.(중요인물 1호)
덴지 즉 나카노오에(中大兄)가 왜에서 일본으로 국호를 바꿨기 때문입니다.
이 나카노오에에 대해 앞으로 쓸 게 많으니 주목해주세요.(나카노오에의, 나카노오에에 의한, 나카노오에를 위한 글)
 
<나카노오에 - 위키백과>
덴지 천황(일본어: 天智天皇 텐치 텐노/텐지 텐노, 626년 ~ 672년 1월 7일)는 일본의 38대 천황이다. 일본식 시호는 아메미코토히라카스와케노미코토(일본어: 天命開別尊) 다른 시호는 덴지 천황이다. 본명은 가즈라키(葛城)지만 나카노오에노 황자(일본어: 中大兄皇子 나카노오오에노오지/나카노오오에노미코)라는 명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나카노오에 - 나무위키>
일본의 제38대 천황.
아버지는 조메이 천황, 어머니는 고교쿠/사이메이 천황(皇極/斉明 天皇)이였다. 휘는 카즈라키/가쓰라기(葛城)이지만 존호인 나카노오오에 황자(中大兄皇子)로 더 잘 알려져있다.
 
그래서 널리 알려진 나카노오에로 부르겠습니다.
 
일단 다시 돌아와서, '야마토'라는 글자는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인가?
일본 고대사를 조금이라도 본 분들은 야마타이국의 비미호를 아실 겁니다.
야마타이국이 야마토인지 아닌지에 대해 (한일) 사학계는 설이 분분합니다.
이미 위에 썼듯이 일본 고대사의 미스터리를 풀려면 이것부터 먼저 풀어야 합니다.
 
야마타이국(邪馬臺國)은 삼국지 왜전에 나오는데, 알고보니 (일본에서) 글자를 바꿨습니다.
<야마타이국 - 나무위키, 주1>
邪馬台国 (현대 일본어의 신자체)
 
뿐만 아니라 비미호도 한자를 바꿔 쓰고 있습니다.(히미코 - 나무위키)
卑彌呼 → 卑弥呼
 
여기서 제일 중요한 한자를 저렇게 바꾸면 야마타이국의 비밀을 풀 수 없게 됩니다.
혹 의도적으로 글자를 바꾼 건가요?
아니 대체 무슨 비밀이 있길래..?
 
臺의 간체자 - 台
彌의 간체자 - 弥
 
비미호(卑彌呼) - 卑彌국 출신, 卑弥呼라 하면 卑彌국 출신임을 알 수 없음.
일본 사학계는 자신들의 옛 여왕인 비미호의 출신이 한반도 남부의 일개 소국인 비미국이라는 것이 싫은 겁니다.
즉 이것이 널리 알려져선 안되기에 글자를 바꾼 겁니다.(누구 맘대로?)
 
야마타이국(邪馬臺국) - 邪馬台국이라 하면 아래 설명할 비밀을 풀 수 없음.
 
삼국지 왜전에 보면 비미호의 후계자로 토요(臺與)가 있습니다.
한자에 따라 이요(壹與)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아래 설명할 이유로 토요가 맞고 이요는 틀린 것입니다.
토요(臺與) O
이요(壹與) X
 
<토요 - 나무위키>
고대 일본에 존재했던 야마타이국의 여왕. 히미코 가문 종친의 딸(宗女). 중국의 사서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만 등장하고 정작 일본 기록에는 등장하지 않으며 일본 국내에서 전해지는 왕계와도 일치하지 않아 그 정체에 대해 여러 설이 제기되고 있다.
 
이 토요의 대(臺)자는 대만(타이완, 臺灣)의 대자와 같은 한자입니다.(← 중요한 건 아님, 그냥 참고)
역시 간체자로 台灣으로도 씁니다.
 
근데 야마타이국(사마대국, 邪馬臺國)의 臺자와 토요(臺與)의 한자가 같은데, 臺자를 '토'라고 읽습니다.(← 이게 중요함)
일본인들이 臺를 왜 '토'라고 읽는지는 중요치 않습니다.
중요한 건, 臺자를 '토'라고 읽는다는 그 자체입니다!
 

그럼 야마타이(邪馬臺)도 야마타이가 아니라 야마토라고 읽어야 하는거 아닙니까?
인명에만 꼭 '토'라고 읽으란 법이 있나요?
즉 야마토(大和)는 원래 이 야마토(邪馬臺)에서 온 겁니다.
야마토(邪馬臺) → 야마토(大和)
 
결국 사료의 번역을 잘못한 겁니다.(오역)
야마타이(邪馬臺) X
야마토(邪馬臺) O
 
따라서 옛 사료에 나오는 글자를 함부로 간체자를 쓰면 안됩니다!
이게 중국·일본 학자들이 사료 해석을 못 하는 이유입니다.
 

참고로 臺자를 '토'라고 읽은 예로 쇼토쿠 태자의 다른 이름이 있습니다.

즉 쇼토쿠(聖德)는 후세의 추존이고, 원래는 '토요토미미 황자'(聡耳皇子)입니다.

(소가, 4.1. 토요와의 관계 - 나무위키)

 

근데 역시 후세에 이 臺자를 다른 글자로 바꿔버렸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토요토미 히데요시' 할 때의 그 토요(豊)입니다.(豊臣秀吉)

豐 = 豊

 

도요토미미노미코(聰耳皇子풍총이황자)
우헤노미야노우마야토노토요토미미(上宮廐戶聰耳命상궁구호풍총이명)

<쇼토쿠 태자 - 위키백과>
왕자의 다른 이름으로 도요토미미(豊聡耳, 또는 도요사토미미), 가미쓰미야 왕(上宮王)이라는 호칭도 있는데, 호류지의 승려 현진이 기록한 《쇼토쿠 태자 전사기(聖徳太子伝私記)》는 게이운 3년(706년)경에 제작되었다는 《법기사탑노반명(法起寺塔露盤銘)》을 인용해 상궁태자성덕황(上宮太子聖德皇)으로 기록하였으며, 《고사기》(와도和銅 5년인 712년 성립)는 우에쓰미야노우마야도노도요토미미노미코토(일본어: 上宮之厩戸豊聡耳命), 《일본서기》(요로養老 4년인 720년 편찬)에는 우마야도노미코 외에도 도요토미미노쇼토쿠(豊耳聡聖徳)、도요토미미노노리노오키미(일본어: 豊聡耳法大王), 노리노우시노오키미(일본어: 法主王), 도구쇼토쿠(東宮聖德) 등으로 기록하고 있다.

 

즉 후대 어느 시기에 글자를 바꾼 겁니다.(이유는 불명)

이 과정에 토요(臺與)와 연관이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臺(토) → 豊(토요)

 

이 뿐만이 아닙니다.

<소가, 4.1. 토요와의 관계 - 나무위키>

33대 스이코 덴노의 시호는 '토요미케카시키야히메'(豊御食炊屋姫尊)였으며, 궁궐은 아스카의 유라노미야(浦宮)였는데, 이는 '토요의 항구에 있는 궁궐'이라는 뜻으로 진구 황후의 궁궐과 완전히 같았다. 스이코 덴노의 오라버니인 제31대 요메이 덴노의 시호인 '타치바나노토요히노미코'(橘豊日尊)에도 '토요'(臺)가 들어간다.
소가노 이루카나 소가노 에미시도 '유라노오미'(浦大臣)라는 이명을 가지는 등 아스카의 소가 정권과 소가 계열 덴노들은 전부 토요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때문에 소가씨가 사실 야마타이국의 전설적인 여왕인 토요의 후예라는 추측이 있다.

 

다시 돌아와, 이 야마토(邪馬臺)를 옛날 어느 시기에 누군가 야마토(大和)라고 바꿨습니다.
왜냐하면 야마토국(邪馬臺국)은 辰(백제)의 일개 소국이기 때문입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그게 싫기 때문에 한자를 바꿔버렸습니다.(이때부터 글자를 날조함)
邪馬臺 → 大和
 
그게 누굴까요?
나카노오에 입니다.
 
이걸 일본인들(특히 사학 교수, 학자)이 모를 리가 없습니다.
혹 아는데도 모른채 쉬쉬하는 건가요? (모르쇠)
그래서 야마타이국이 야마토인지 아직도 학계가 설이 분분하며, 야마토(邪馬)의 한자를  邪馬로 바꾼건가요?
 
하긴 그들이 아는데도 쉬쉬하는 이유를 이해는 합니다.
왜냐하면 일본은 아직도 천황제이기 때문입니다.
 
천황이 버젓이 계시는데 대놓고 감히 옛 역사(즉 천황의 조상)에 대해 운운하는 건 그들 입장에선 불경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옛 역사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없습니다.(오히려 날조함)
말하면 일본사회에서 어떻게 되는지는 생략하겠습니다.(ㅡㅡ;)
하지만 우리는 한국인이기에 이것에 대해 말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까발려야 함)
 
이제 삼국지 왜전에 나오는 비미호의 야마타이국이 실은 야마토국이라는 것까지 밝혔습니다.
야마토(邪馬臺) = 야마토(大和)

 

또한 상기한대로 대왜가 야마토입니다.
대왜(大倭) = 야마토(大和)

 

邪馬臺 = 大倭 → 大和

 
처음에 和를 주장한 인물은 쇼토쿠라고 했습니다.(헌법 17조)

그리고 쇼토쿠 사후 邪馬臺(大倭)가 大和로 변신합니다.(오기칠도)

 

이러한 과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있습니다.

즉 나카노오에 입니다.
 
삼국지 왜전에 야마타이국 야마토국(邪馬臺국)의 비미호는 여왕으로 나옵니다.
즉 이 시대에 열도 왜의 임금은 王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倭王)
이는 삼한시대에 韓왕이 있었고 辰왕이 있던 것과 같은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진왕은 대왕이었다는 걸 전 글들을 통해 누차 설명했습니다.
 

<삼국지 한전>
그중에서 12國은 辰王에게 臣屬되어 있다.
辰王은 (그 12국의 왕을) 항상 馬韓사람으로 王을 삼아 대대로 世襲하였으며, 辰王이 (그들을) 자립해서 王이 되지 못하게 하였다.
其十二國屬辰王 辰王常用馬韓人作之 世世相繼 辰王不得自立爲王
魏略: 그들은 옮겨온 사람들이 분명하기 때문에 馬韓의 제재를 받는 것이다.

 
즉 삼한시대에서 삼국 초기에는 마한 50여국의 임금은 (큰 나라는) 신지(臣智), 변진한 12국의 임금은 왕이라고 합니다.
이들을 진왕이 통제하므로 곧 대왕인 겁니다.
백제왕을 대왕이라 칭한 건, 일본서기 흠명 2년 4월조, 5년 11월조에서도 증명됩니다.(장문이라 생략함)
 
<삼국지 한전>
각각 우두머리(長帥)가 있어 세력이 강한 사람은 스스로 신지(臣智)라고 하고 다음은 읍차(邑借)라 한다.
 
당시 왜국의 왕을 진왕이 역시 임명한다는 것도 전 글들에서 누차 설명했습니다.
예: 비미국(卑彌국)의 비미호(卑彌呼)를 진왕이 임명
 
근데 당시 열도에는 마한계의 유물과 가야계의 유물이 나온다고 합니다.(고고학)
이건 뭘 의미하는가?
辰왕이 처음엔 마한 소국의 왕족을 왜국의 왕으로 임명했다가, 변한 정벌 후 이곳의 왕족으로 대체한 겁니다.
그래서 왜왕이 가야에서 건너간 것이라고 많이 곡해들 합니다.
저의 답변이 너무 간단하고 이해가 쉽지 않습니까?
 
또한 알고보니 마한의 신지는, 일본서기에 나오는 고대일본의 관직인 오미(臣)와 같은 개념으로 보입니다.
 
<오오미 - 나무위키>
오오미(大臣おおおみ)는 고대 일본의 관직이다. 한자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말 그대로 '대신'이라는 뜻이다. 지방 귀족 세력(호족)을 중앙으로 편입하면서 등장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오오미로는 불교 도입 당시 모노노베 가문과 대립각을 세웠던 소가 가문의 소가노 우마코, 다이카 개신(정확히는 을사의 변) 당시 제거당한 것으로 잘 알려진 소가노 이루카 등이 있다.
 
즉 지방의 소국 수장을 말함입니다.(→ 臣智)
이는 로마제국이 게르마니아의 싸움 잘 하는 귀족을 중앙으로 불러들여 장군으로 삼은 것과 같습니다.
중앙으로 들어온 지방 소국의 수장들을 오미(臣), 그중에서 유력한 자를 오오미(大臣)란 관직으로 불렀습니다.
지방 소국의 수장 = 오미(臣), 야요이인
 
이는 아래 나오는 무라지와 함께 가바네(性)로 변신합니다.
중앙관직 → 가바네(性)
 
중앙으로 들어온 나머지 지방 소국의 귀족들은 무라지(連)라는 관직을 주어 오미와 차별을 뒀습니다.
그중에서 유력한 자를 오무라지(大連)란 관직으로 불렀습니다.
지방 소국의 귀족 = 무라지(連), 조몬인
 
<무라지 - 위키백과>
무라지(連, むらじ)는 고대 일본 야마토 왕권(ヤマト王権)의 통치를 받았던 가바네(姓)의 하나로, 왕권의 가신(家臣) 가운데 최고위 위치에 있었던 가바네의 하나였다.
일찍이 무라지는 야마토 왕권에 직속되어 있던 유력 씨족 가운데 발탁되어 주어진 가바네로 알려져 있으며, 특수한 관직이나 직업을 지닌 입장에 있었다. 무라지라는 가바네를 사용한 유력 씨족으로는 오토모 씨(大伴氏)나 모노노베씨(物部氏)가 있으며, 이밖에도 나카토미 씨(中臣氏) ・ 하제 씨(土師氏) ・ 유게 씨(弓削氏) ・ 오와리 씨(尾張氏) 등의 여러 씨족이 있었다.
《일본서기》(日本書紀) 등에 따르면 무라지 가바네는 대부분 왕실 이외의 신(神)의 자손을 자처한 자들의 가바네였다.
중앙의 유력 호족들이 중심이었던 오미(臣)에 비해 무라지 가바네를 가진 씨족은 조정의 역직(役職)과도 직결되어 있었고, 오토모 씨나 모노노베 씨도 그 이전부터 야마토 왕권의 군사를 맡아보는 역할을 지닌 씨족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성을 가바네로 하겠습니다.
 
즉 오미(臣)는, 백제에서 정벌한 조몬의 소국들 임금을 마한인(야요이인)으로 임명한 수장인 겁니다.(담로제)
이건 마한의 신지(臣智)와 똑같은 것입니다.
辰에서 백제로 바뀐 후, 이에 따라 야마토의 관직체계도 발전·진화한 겁니다.
 
위에 나온 바대로, 대표적인 오오미는 소가씨입니다.
즉 소가씨는 야요이인입니다.(→ 백제인)
오미(臣) = 야요이인
오오미(大臣) = 야요이인, 오미들의 수장, 1명(?),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
 
반면 백제에 항복해 신속(臣屬)하면 그 조몬인 수장도 무라지(連)가 됩니다.
신속(臣屬)한 지방 소국의 수장 = 무라지(連), 조몬인
 
이들이 어떻게 조몬人인지 아냐구요?
위에 '대부분 왕실 이외의 신(神)의 자손을 자처한 자들'이라고 한 것이 그것입니다.
 
야마토 왕실의 神은 백제의 神입니다.
왜냐하면 야마토왕이 백제대왕의 친족이기 때문입니다.
근데 그외의 神의 자손이다? (일본서기)
즉 그들은 조몬의 神을 믿는 조몬인입니다.
조몬의 神 = 아마테라스 등(일본서기에 나오는 신들)
 
<아마테라스 - 나무위키>
아마테라스는 일본 신화, 신토의 주신으로 태양의 신이다. 또한 일본 황실의 황조신(皇祖神)이다. 또한 신들의 군주로서, 일본 신화에서 천상세계이자 신령들의 영역인 타카마가하라를 다스린다.
 
이땐 이미 조몬인이 지배층이 되었기에 그렇습니다. ↑
열도 왜의 지배층: 야요이인 → 조몬인
야마토(야요이인) → 일본(조몬인)
↑ 이것에 대해 다음 글에서 설명 이어집니다.
 
그전엔 야마토 왕실의 神은 백제의 神이었습니다.
백제의 神 = 천지신명(天地神明)

 

< 천지신명 - 구글AI>

천지신명(天地神明)은 하늘(天)과 땅(地)의 온갖 신령(神明)을 통칭하는 말로, 우주의 조화를 주재하며 인간의 길흉화복에 관여하는 전통적 신앙의 대상을 뜻합니다. 민속 신앙이나 무교에서 기도의 대상이 되며, 하늘의 뜻과 도와 덕을 지닌 절대적 존재로 여겨집니다. 

핵심 내용
의미: 천지(우주)의 조화를 맡은 모든 신령.
구성: 하늘의 신(天神)과 땅의 신(地神)을 포함하는 개념.
특징: 한국 고유의 민속 신앙, 무교, 그리고 전통 사상에서 기도의 대상.
유사 개념: 일월성신(해, 달, 별의 신)과 함께 한국 무속에서 중요하게 모시는 신격.

 

백제는 이들의 충성맹세를 다짐받고 되새우기 위해 특히 '연결할 連'자를 썼습니다.
"이제 우린 한 몸이다, 우리가 남이가?"
 
무라지(連) = 조몬인
오무라지(大連) = 조몬인, 무라지들의 수장, 1인(?), 이인지하 만인지상(二人之下 萬人之上)
 
일본 고대사에서 유명한 모노노베씨는 토착세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불교 반대로 유명)
즉 조몬인입니다.
 
<소가노 이나메 - 위키백과>
538년, 최고 대신 소가노 이나메는 백제 성왕이 보내준 금동석가상을 자신의 저택에 모셔다 놓고, 자택을 코우겐지(向原寺)로 삼았다. 이 무렵 국신파였던 모노노베노 오코시〔物部尾輿, 모노노베노 모리야의 아버지〕 대련(大連)이 조정에서 불교를 배척하기 시작했다.
 
소가 XX - 야요이인, 오오미(大臣), 오미들의 수장
모노노베 XX - 조몬인, 오무라지(大連), 무라지들의 수장
 
마찬가지로 다음 글에서 나올 유명한 나카토미(中臣)씨, 오와리(尾張)씨도 지방의 토착세력, 즉 조몬인입니다.(← 주목)
참고로 오와리는 노부나가의 고향입니다.(즉 조몬인)

원본 지도 출처: 오와리국 - 위키백과

 
당시 열도의 지배층은 야요이인이니 무라지보다 오미가 계급이 높음은 물론입니다.
야요이인 > 조몬인
오미(臣) > 무라지(連)
 
하지만 어느 시기에 누군가에 의해 이 지배체제가 뒤바뀝니다.
바로 아스카시대 말, 나카노오에 입니다.
이 사건은 유명한 을사의 변으로 다음 글에서 집중조명 합니다.
 
<팔색성제 = 씨성제도 - 위키백과>
오미(臣)
가쓰라기 씨(葛城氏), 헤구리 씨(平群氏), 고세 씨(巨勢氏), 가스가 씨(春日氏), 소가 씨(蘇我氏)와 같이, 야마토(지금의 일본 나라 분지 주변)의 지명을 씨로 삼은 것으로 과거에는 야마토 왕가와도 대등한 입장에 있었던, 야마토 왕권 내에서도 최고의 지위를 차지했던 호족이다.
무라지(連)
오토모 씨(大伴氏), 모노노베 씨(物部氏), 나카토미 씨(中臣氏), 이미베 씨(忌部氏), 하제 씨(土師氏)와 같이 야마토 왕권에서 맡은 직무를 씨로 삼은 것으로, 왕가에 종속된 관인(官人)의 입장에서 야마토 왕권의 성립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호족이다.

 
참고로 팔색성제는 나카노오에가 시작하고 그 친동생인 오오아마(大海人)가 확립·제정했습니다.(오오아마=덴무 천황)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덴무 천황 - 위키백과, 나무위키 등을 참고하세요.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게 있습니다.
위에 중앙정계로 진출하면서 이 관직들이 가바네(性)로 변신했다고 했습니다.
즉 당시 열도의 왜인들은 이름만 있고 性이 없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야마토 조정에서 관직을 하사받은 연후에야 이걸 성으로 쓴 겁니다.(사성)
 
고대일본 인물들 이름을 보면 하나같이 '가바네이름'의 구조로 불립니다.
예: 소가 이나메, 모노노베 오코시
왜 그럴까요?
 
그건 이때 야마토왕에게 하사받은 사성(賜姓)이기 때문입니다.
왕에게 받은 성이기에 가문의 영광을 드러낼 목적으로 '가바네の이름'의 구조로 불립니다.(→ 명예)
즉 야마토왕은 그냥 가바네와 이름만 부를 뿐입니다.
예: 소가 이나메, 모노노베 오코시
 
그럼 상대 가문들은 어찌 부를까요?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고운 법입니다.
상대 가문을 존중해 '가바네の이름'의 구조로 부릅니다.
참고로 이 존중·배려는 일본 특유의 문화임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또한 백성들은 가바네가 없음은 물론입니다.
중세, 근대에 와서야 백성들도 대부분 가바네를 갖습니다.
왕족, 귀족 소유의 사유민(私有民)은 예외입니다.
그들이 부리기에 편의상 가바네를 준 것, 포상으로 가바네를 준 것 뿐입니다.(즉 극소수의 백성)
 
하지만 '가바네の이름'의 구조로 불리진 않습니다.
예: 오다 노부나가, 하시바 히데요시, 토쿠가와 이에야스 등
↑ 천황 입장에서 모두 백성임.

 

참고로 히데요시는 최초로 성주가 되면서 하시바로 직접 짓고, 이에야스도 역시 독립하며 마츠다이라에서 직접 토쿠가와로 지음.
히데요시는 천하인이 되고나서 천황으로부터 토요토미 성을 하사받음.(형식적인 천황의 양자가 됨)

즉 원래는 토요토미 히데요시 임.


근데 '가바네の이름'은 야요이식이 아닌 조몬식입니다.
당시의 지배층인 야요이인의 본국인 백제에서는 그렇게 부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백제식 X
 
원래 소가씨는 백제의 대성팔족 중 하나인 목씨라는 설이 있습니다.
중요하기에 많이 인용해 봅니다. ↓
 
<소가 - 나무위키>
크게 야마타이국의 여왕 토요의 후예라는 설과 백제-마한계 도래인이라는 설이 있다. 참고로 두 지역은 모두 Cis-AB형 혈액형이 관찰되는 지역이라는 공통점이 있어 양자 모두 모순없이 성립이 가능하다.
11세기에 편찬된 역사서인 《부상략기》에는 제33대 스이코 덴노 시절인 593년 1월 "아스카사 목탑 초석에 사리를 안치하는 행사를 할 때 소가노 우마코를 필두로 100여 명의 사람들이 모두 백제 옷을 입고 나타나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해줬다."라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 역시 소가 가문과 백제 사이의 특수한 관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백제계인 것은 확실치 않지만 백제와 깊은 연관이 있었음은 확실해 보인다.
한국 사학계에서는 끊임없이 소가 가문이 백제 출신이라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고, 한국 사회에서는 소가 가문이 백제 출신인 것처럼 그려지지만, 일본 사학계에서는 증거가 없다며 무시하고 있다. 한국 역사학자들이 소가 가문의 뿌리가 백제에 있다고 주장하는 근거로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 5세기의 대신인 소가노 마치(蘇我滿知)와 비슷한 시기 활동한 백제 목만치(木滿致)의 한자가 비슷하다.
  • 둘째. 소가 가문의 역대 계보를 살펴보면 한자(韓子), 고려(高麗)와 같은 한반도 풍의 이름이 자주 보인다.
  • 셋째. 소가 가문이 도저히 그 유래를 추적할 수 없다가 5세기에 갑자기 일본 정계에 갑툭튀했는데, 또 교묘하게도 백제의 8성 귀족 중 하나였던 목(木)씨가 비슷한 시기 소리 소문 없이 백제 중앙 정계에서 사라져버렸다. 즉 목씨 가문 전체가 다 같이 일본으로 이주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하지만 반론도 존재한다.
 

  • 목만치가 일부러 왜국에 가서 나무 '목'과 관련없는 '소가'라는 성씨를 썼다는 점을 설명하기 어렵다.
  • 《일본서기》 기년상 소가노 마치는 적어도 리추 덴노 재위기인 401년부터 국정에 관여한 인물인 반면, 목만치는 구이신왕이 즉위한 420년 무렵까지 백제에서 전횡하다가 왜국으로 소환된 것이기에 활동 시기가 맞지 않는다.
  • 백제계라 고려(고구려)와는 빈번한 전투로 반감이 있었을 텐데, 고려라는 이름을 쓸 이유가 없다.
  • '한자'는 일본인이 한반도 출신의 여성과 결혼해서 낳은 혼혈이라는 뜻이라고 《일본서기》에 쓰여 있다.
  • 소가씨가 등장하기 시작하는 5세기 중반 이후에도 목간나, 목리불마, 목리마나, 목윤귀, 목리미순, 목리금돈, 목리문차 등 목씨/목리씨에 속하는 백제 인물들이 여럿 나타나므로, 목씨가 정계에서 사라졌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특히 목리마나와 목윤귀는 각각 중·하좌평의 높은 벼슬을 지냈다.

 
하지만 소가노 이루카의 별칭으로 제시되는 林大臣, 我入鹿, 鞍作大郎 등을 인용했을 때, 鞍作은 《부상략기》에 의하면 백제계 도래인으로 명시되어 있어, 그의 출자에 대한 논란은 아직도 말이 많다. 언급되었던 林大臣 또한 《신찬성씨록》에 의하면
左京諸蕃百濟林連百濟國人木貴公之後也
임씨는 백제국 목씨에서 나온 가문이다.
라고 적혀 있다.
쇼토쿠 태자의 전기 자료인 《상궁성덕법왕제설》에 소가씨가 원래 임(林)씨라는 기록이 있는데, 위의 막연한 근거들보다는 좀 더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목만치 - 나무위키'도 참고하세요.
 
위 반론을 다시 반론 가능합니다.

  • 목만치가 일부러 왜국에 가서 나무 '목'과 관련없는 '소가'라는 성씨를 썼다는 점을 설명하기 어렵다.

재반론: 목만치가 열도에서 소가씨를 쓴 건, 조몬인들이 그렇게 부른 것입니다.
지배층이 조몬인으로 바꼈을 때, 모두 조몬식(和식)으로 기록했습니다.(일본서기, 고사기 등)
 

  • 《일본서기》 기년상 소가노 마치는 적어도 리추 덴노 재위기인 401년부터 국정에 관여한 인물인 반면, 목만치는 구이신왕이 즉위한 420년 무렵까지 백제에서 전횡하다가 왜국으로 소환된 것이기에 활동 시기가 맞지 않는다.

재반론: 일본서기는 연도가 맞지않음은 유명합니다.
즉 이를 일본서기의 연도에 맞추면 안됩니다.(날조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19년 차이는 거의 동시대로 보는 게 타당합니다.
 

  • 백제계라 고려(고구려)와는 빈번한 전투로 반감이 있었을 텐데, 고려라는 이름을 쓸 이유가 없다.

재반론: 그건 현대식 해석으로 착각과 곡해입니다.
반감이 큰 만큼 적개심을 잊지말라는 뜻으로 쓸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 재반론: 목씨 전부가 건너간 건 아니라고 봅니다.
 
이렇듯 보면 설들이 난무한데 결론을 말하자면, 저는 소가노 마치는 목만치가 맞다고 봅니다.
즉 목만치의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 목라근자는, 소가노 마치의 할아버지라는 고대일본의 유명한 장수 다케우치노 스쿠네(武内宿禰)입니다.
소가노 마치 = 목만치
다케우치노 스쿠네 = 목라근자
 
근초고왕의 정이대장군 목라근자가 열도를 정벌할 때, 조몬인들은 목라근자를 다케우치노 스쿠네라고 불렀던 겁니다.
(목라근자가 열도를 정벌함은 전 글에서 이미 언급함)
 
<다케우치노 스쿠네 - 나무위키>
일본서기에서는 이름을 武內宿禰라, 고사기에서는 建內宿禰라고 적는다. 그뿐 아니라 성을 읽는 방법마저도 혼동스러워서, '타케우치노'라고 하기도 하지만 '타케노우치노' 또는 '타케시우치노'라고 읽기도 한다.
편의상 무내숙녜라고 하겠습니다.
 
참고로 다케우치(武内)는 지역명, 스쿠네(宿禰)는 관직명으로 보입니다.
즉 다케우치를 다스리는 수장인 것입니다.
이는 백제대왕이 목라근자가 열도를 정벌한 공으로 다케우치 지역을 상으로 준 겁니다.(담로제)
저의 견해는 학계의 설과 다름. ↑
학계의 설은 다케우치노 스쿠네 - 위키백과, 나무위키 등 참고
 
<무내숙녜가 목라근자라는 증거>

  • 무내숙녜는 (사실 여부를 떠나) 신공·응신 때 활약.
  • 이때는 백제 근초고왕 때로 시대가 일치.
  • 무내숙녜의 손자 소가노 마치는 5세기 초 활약.
  • 목라근자의 아들 목만치는 5세기 초중 활약.
  • 즉 동시대이며 아들·손자의 차이는 있을 수 있는 오류로 봄.

 
한편 당시 왜왕의 다른 호칭으로 대군(大君)이 있습니다.
이 대군은 일본어로 오오키미라고 읽는데, 보통 大王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니 대왕이면 대왕이지 대군을 어떻게 대왕이라 한 걸까요?
君이 '임금 군'이라서 왕과 같은 뜻이라 보면 현대인의 착각과 곡해입니다.
 
<진수 - 위키백과>
진수(陳壽, 233년 ~ 297년)는 중국 삼국시대 촉한 ~ 서진의 관료로, 자는 승조(承祚)이며 익주(益州) 파서군(巴西郡) 안한현(安漢縣) 사람이다.
정사 삼국지는 삼국시대의 인물들을 다룬 역사서로 서진의 진수(陳壽)가 저술했고 조위의 배잠(裴潛)이 위나라를 정통으로 편찬했다.
《사기》, 《한서》, 《후한서》와 함께 4대 정사(四大 正史)로 분류된다.
 
즉 삼국지 왜전은 진수의 말년인 3세기 말에 쓰여졌으니,  이 무렵 왜는 왕이란 호칭을 썼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근데 아스카시대에 나카노오에가 '왜를 일본으로 바꾸고 오오키미(大君)를 천황'으로 바꿨습니다.(일본서기)
편의상 대군을 오오키미라 하겠습니다.
왜 → 일본
오오키미 → 천황
 
<아스카 시대 - 위키백과>
아스카 시대(일본어: 飛鳥時代あすかじだい 아스카지다이)는 일본사의 시대 중 하나로, 고훈 시대의 뒤에서 헤이안 시대의 앞에 오는 시대이다. 넓은 의미에서는 나니와궁이나 아스카쿄에 궁도(宮都)가 놓여 있던 스이코 천황 원년(593년)부터 겐메이 천황 3년(710년)에 걸친 118년을 가리킨다. 좁게는 쇼토쿠 태자가 섭정한 스이코 천황 원년(593년)부터 후지와라쿄로의 천도가 완료된 지토 천황 8년(694년)에 걸친 101년, 혹은 스이코 천황 원년(593년)부터 겐메이 천황 3년(710)에 걸친 117년간을 가리킨다. 이전엔 고훈 시대와 합쳐서 야마토 시대로 부른 시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고훈 시대와 아스카 시대를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나무위키도 비슷합니다.
<아스카 시대 - 나무위키>
아스카 시대(飛鳥時代あすかじだい)는 일본의 시대 구분 중 하나이다. 기간은 아스카쿄가 세워진 592년(양력 593년)부터 헤이조쿄(나라) 천도인 710년까지이다. 더 넓게 잡으면 일본에 불교가 유입된 538년부터 시작으로 볼 수 있으며, 이 경우 고훈 시대와 겹친다. 한국사의 삼국시대 후반부 및 남북국시대 전반기와 겹친다.
 
즉 아스카시대(6세기말~8세기초)의 초기(6세기말)에는 왕이 아닌 오오키미(大君)였던 겁니다!
또한 사료 어디에도 열도의 임금을 대왕이라 칭하지 않습니다.(일본사료 제외)
 
오히려 백제왕을 대왕이라 칭하는 게 일본서기에 나옵니다.
일본서기 편자들이 백제기의 기록을 미처 삭제 못 했거나, 이미 대왕 위에 천황이니 그대로 둔 거 같습니다.
백제왕을 대왕이라 칭한 건, 일본서기 흠명 2년 4월조, 5년 11월조에서 증명됩니다.(장문이라 생략함)
 
이런 건 직접 읽어야 합니다.
http://contents.nahf.or.kr/item/level.do?pageIndex=4&pageUnit=10&pageSize=1&orderColumn=LEVEL_ID&orderDir=ASC&itemId=ns
 
전 글들에서 누차에 걸쳐 辰(백제)왕이 열도 왜왕을 임명한다고 했습니다.(담로제)
즉 진왕은 마한의 소국 중 왕족을, 백제대왕은 친족(친아들, 친동생)을 말함입니다.
이제 답이 나오지 않나요?
 
辰의 시대엔 열도의 임금을 왕이라 칭했고, 백제 때는 오오키미(大君)라고 했던 겁니다.
辰 시대 - (대왜)왕, 야마토국(邪馬臺국)왕
백제 시대 - 오오키미(大君)
 
이 오오키미 역시 백제인의 발음이 아닌 조몬인의 발음입니다.(和식)
백제인은 아마 다이쿤 또는 대군이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즉 한자(칸지)를 일본인은 두 가지로 읽는데, 하나는 음독이고 다른 하나는 훈독입니다.
 
<일본어 한자의 음독(音読)과 훈독(訓読)>
음독(音読)이란, 말 그대로 한자를 읽을 때 음(소리)으로 읽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훈독은, 한자를 읽을 때 한문의 훈(새김/뜻/의미)을 새기어 말이나 글의 뜻(의미)을 알기 쉽게 풀이하여 읽는 것을 이른다.
[알고 쓰는 말과 글] 일본어 한자의 음독(音読)과 훈독(訓読) - 광주데일리뉴스
 
음독의 예: 山 → 산
훈독의 예: 山 → 야마
 
이는 야요이인과 조몬인의 결합과 관계 있어 보입니다.
야요이인은 음독을, 조몬인은 훈독을 선호·애용한 것입니다.
즉 한자는 조몬인의 글자가 아니고 문화도 아닙니다.
이는 전 글들에서 이미 설명한 것입니다.
 
<당시 조몬인이 한자를 和식으로 읽는 예>
한풍: 텐무 (天武)
화풍: 아메노 누나하라오키노 마히토노 스메라 미코토 (天渟中原瀛真人天皇)
 
↑ 이건 열도의 원주민들이 중국의 한자를 저렇게 자기 식대로 읽은 겁니다.
이게 훈독입니다.
현대 일본인은 어려운 한자의 훈독을 못 읽습니다.
즉 읽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모릅니다.
 
오오키미는 왕보다 더 상위의 개념, 즉 훨씬 권위 있는 호칭으로 추정됩니다.
왜냐하면 오오키미는 백제대왕의 친족이기 때문입니다.
훗날 오오키미가 대왕이라고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하지만 대왕은 엄연히 백제왕이 대왕이기에 오오키미를 대왕이라 해석하면 안됩니다.
굳이 해석하자면 그냥 '대군'입니다.
 
이는 위에 설명한 오미(臣)와 무라지(連)의 관계와 같은 구조입니다.
 
오미(臣) - 백제대왕이 임명한 마한인(야요이인), 열도 소국의 수장·귀족
무라지(連) - 백제에 신속한 지방 토착인(조몬인), 열도 소국의 수장·귀족
 
스쿠네(宿禰) - 백제대왕이 임명한 마한인(야요이인), 열도 한 지역의 수장(예: 탐제, 관령, 관동관령 등)
 
대솔(大率) - 열도의 소국들을 검찰 (참고 - 삼국지 왜전)
 
야마토왕(大倭왕) - 辰왕이 임명한 마한 소국의 왕족(야요이인)
오오키미(大君) - 백제대왕의 친족(친아들, 친동생)
 
이를 그림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오오키미가 백제대왕의 친족이라는 증거는 전 글들에서 누차 설명했습니다.
또한 대군은 왕의 친자를 대군이라 함은 조선시대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예: 세종의 둘째 아들, 수양대군
 
<대군 - 위키백과>
대군(大君)은 고려 시대 및 조선 시대에 왕자들에게 내려진 작호의 일종이다.
 
시대가 먼 후대인건 중요치 않습니다.
포인트는 왕의 친자를 대군이라 한 겁니다.
참고로 서자는 대군이 아닌 그냥 君입니다.
예: 선조의 서자, 광해군
 
중요한 건, 당시 열도 왜의 임금을 대군이라 했다는 겁니다.
아니 대왕이면 대왕이지 왜 대군이라 했을까요?
시대변천상 왕 → 대왕이지, 왕 → 대군이 아니지 않습니까?
대왕이란 한자를 모를 리도 없을텐데 말입니다.
 
이건 열도 왜의 임금이 대왕이 아니고, 또 후에 대군이라 함은 '백제에서 왕자가 건너간 임금'이란 걸 의미합니다.
즉 본래 백제에서 부르는 호칭인데, 백제는 망해 사료 전무하고 열도의 조몬인이 부르는 오오키미가 전해진 겁니다.
이에 대한 증거는 전 글들에서 누차 설명했습니다.
 
근데 일본서기에 君이 백제대왕의 친족이라 나오는 결정적인 증거가 있습니다.
 
<부레츠(武烈) - 일본서기>
7년(505년) 여름 4월에 백제왕이 사아군(斯我君)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별도로 “지난번에 조공한 사신 마나는 백제국주의 골족(骨族)이 아닙니다. 그래서 삼가 사아(斯我)를 보내어 조정에 봉사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표를 올렸다. 이윽고 자식이 생겨 법사군(法師君)이라 하였다. 이가 곧 왜군(倭君;야마토노키미)의 선조다.
 
더 설명이 필요한가요?
부레츠가 하도 포악무도하여 사마대왕이 사아군을 보낸 겁니다.
그후 부레츠가 어찌 되는 지는 말이 필요없습니다.(→ 사지절단형)
 
아스카시대에 오오키미를 천황으로 바꾸고, 자신 이전의 모든 선조들을 천황으로 바꿨습니다.
누가?
나카노오에 입니다.
이 과정에서 기록의 삭제와 날조가 이뤄진 겁니다.
예: 신무, 결사팔대, 신공 등, 연대 날조
 
근데 그것들보다 더 확실하고 중요한 충격적인 증거가 있습니다.
이걸 증거하려고 지금까지 서론을 쓴 거였습니다.
누구에 의한?
나카노오에 입니다.
 
본론을 쓰기 전에 먼저 당시의 시대배경을 파악해야 합니다.
 
우린 백제가 열도 왜에 문물을 전해줬다고 알고 있습니다.
근데 어떤 문물을 얼마나 전해줬길래 수백년 동안 전해준 걸까요?
아니면 수백년 동안 전해준 게 아닌가요?
혹시 찔끔찔끔 전해준 건가요?
 
삼국지 한전에 따르면, 3세기에 삼한의 백성들은 움막집에서 살았습니다.
(이 움막집은 제가 처음에 삼한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됩니다)

<움막집>
움집은 땅을 파고 내려가 벽체 없이 지붕만 씌운 건축물이다. 움막이라고도 하며 고고학에서는 수혈주거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신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보편적인 살림집으로 이용되었다. 움집을 만들 때는 먼저 두 개의 기둥을 땅에 박아 Y자형으로 고정시킨다. 지붕은 풀이나 짚단으로 만든다. 움집의 평면은 원형과 방형이 일반적이다. 움집은 비바람은 피할 수 있어도 땅에서 올라오는 한기는 막을 수 없었다. 철기시대에 이르러 온돌이 발명되면서 이러한 불편은 해소된다. 영동지방 등에서는 김치 같은 저장용 건물로 움집을 이용하고 있다.
출처: 움집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움집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물론 귀족 이상은 기와집에서 살았을 겁니다.
그럼 한반도 남부 삼한의 백성들이 움막집에서 살 정도인데, 하물며 열도 왜의 백성들은 어땠을까요?
뭐 사는 것이야 백성들은 비슷했을 겁니다.
 
문제는 소위 말하는 문화수준입니다.
일례로 삼한은 대륙에서 한자가 어느정도 보급되었고 철기를 쓰는 시대라면, 그에 비해 열도에서의 한자는 극소수의 귀족 이상만 아는 문자였습니다.
그리고 철기가 아닌 신석기를 쓰는 미개한 시대였던 겁니다. ↓
일본은, 신석기에서 바로 청동기와 철기가 동시에 들어옵니다.(← 일본 철기시대의 특징)
왜냐하면 辰(백제)에서 청동기, 철기를 동시에 전해주기 때문입니다.(← 근본적 이유, 종합선물셋트)

야요이 시대 - 나무위키

 
여기서 백제인들이 이 기술과 정보를 전부 전해줬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백제인이 열도 조몬인들에게 철기의 만드는 법까지 전해줬다는 것이 천만의 말씀이라는 겁니다.
세상엔 공짜가 없음은 동서고금의 진리입니다.
오는 게 있어야 가는 게 있는 법입니다.
 
전 글들에서 설명했듯, 처음에 辰의 관군 즉 야요이인이 큐슈로 건너가 조몬인을 정벌합니다. ↓
이윽고 기세를 몰아 기나이도 정벌합니다.
이것이 삼국지 왜전에 나오는 왜 20여국입니다.(야마토국(邪馬臺국) 포함)

마한 50여국, 변진한 24국을 행정구역으로 나누었듯 열도도 정벌 후에 20여국을 설치했다고 봅니다.
그외 정벌치 못한 많은 소국들은 조몬인의 것이라고 전 글들에서 누차 설명했습니다.

 
 그럼 辰(백제)에서, 신석기를 쓰는 조몬인을 지배하에 두고 어떻게 수백년을 관리했을까요?
바로 청동기, 철기, 비단옷, 기와집, 한자 등의 문화전수로 관리한 겁니다.
"말 잘 들으면 이거 알려줄께" (찔끔 찔끔)
이는 역시 로마제국과 게르마니아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당근과 채찍)

(열도의 미개는, 아스카시대 전까지 이고) 아스카시대부터 문화가 꽃 피웠다고 합니다.
즉 불교가 들어와 문화가 꽃 피운 겁니다.
과연 그럴까요?
 
이걸 열도 대부분의 곳곳에 문화가 들어갔다고 생각하면 현대인의 엄청난 착각이고 곡해입니다.
즉 위에서 말한 문화는 야마토국(大和국, 나라현)만 들어왔고, 야마토의 귀족들만이 누렸던 겁니다.
아스카시대도 마찬가지로 그외의 지방은 미개했다고 봐야 합니다.

원본 지도 출처: 야마토국 - 위키백과

 
이건 오늘날 서울은 엄청 번화했는데, 지방은 덜 번화한 걸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즉 당시 야마토는 서울이고 그외는 전부 시골이라고 보면 됩니다.
아스카시대에 백제에서 장인과 승려가 와서 절을 창건했다?
모두 야마토국을 두고 말함입니다.
 
이는 오사카, 나라에만 문화재가 집중돼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후대엔 교토 포함)
즉 이 말은, 당시 이곳 빼고는 전부 미개했다는 뜻입니다.
 
참고로 다음 글에서 나오겠지만, 이 야마토국은 분지로 천혜의 요새입니다.(난공불락)
전국시대의 노부나가도 이 야마토국의 츠츠이가(筒井家)를 토벌 못 합니다.
츠츠이가 강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거의 최약체 가문)
이는 코에이의 유명한 게임 '노부나가의 야망'을 해본 사람만 압니다.
지형적으로 유리해서 입니다.(풍납토성을 생각하면 됨)
그래서 야마토의 지배층은 이곳을 쉽게 버리지 못 합니다.
즉 다른 지역으로 도읍을 옮기지 않습니다.
 
야마토의 귀족 이상(야요이인)은 비단옷을 입고 기와집에서 생활했지만, 일반 백성(조몬인)들은 여전히 여름엔 삼베옷, 겨울엔 가죽옷을 입었습니다.
옷이라도 입으면 다행입니다.
빤쓰같은 거* 한장 걸치고 산 시대가 이 시대입니다.(ㅡㅡ;)
*훈도시

비미국에서 열도 기나이를 향해 세토 내해를 배 타고 오며, 저 멀리 육지에서 빤쓰 한장만 걸친 무리들이 이쪽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이때 어린 비미호가 이들을 보고 측근에게 물었을 겁니다.
"저들은 왜 빤쓰만 입고 있나요?"
측근의 대답은 상상에 맡깁니다.
 
참고로 이들의 형상(생김새)은 삼국지 한전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주호 - 삼국지 한전>
마한의 서쪽 바다 가운데 섬에 주호국(州胡國)이 있다. 사람들은 몸집이 작고 머리를 깎고 가죽옷을 입는데 상의만 있고 하의는 없다. 소와 돼지 기르기를 좋아한다. 배를 타고 왕래하고 한(韓)과 교역한다.
즉 상의와 하의만 바꾸면 됩니다.
이들이 꼭 조몬인이 아니라도 당시의 문화수준을 알 수 있는 대목인 겁니다.(3세기)
 
덧붙여 조몬인은 毛人 즉 털이 많은 종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혹시 옷을 안 입어서 그런게 아닐까요?
아니면 털이 많아 옷이 필요 없어서? (농담)
 
야마토에 신속(臣屬)한 조몬의 귀족들은, 야마토왕이 하사한 비단옷에 기와집 생활을 했을 겁니다.
이는 삼한의 귀족들이 한군현에서 하사한 비단옷을 즐겨 입었다는 기록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삼국지 한전>
풍속은 의책(衣幘) 입기를 좋아한다. 하호(下戶)들도 군에 인사드리려고 갈 때에 모두 의책을 빌려 입는다. 자신의 인수(印綬)를 차고 의책을 착용하는 사람이 천여 명이나 된다.
 

또한 아스카 시대의 조정관복은 백제옷입니다.(아스카 시대 - 나무위키)

부상략기(扶桑略記)라는 일본 고대 왕조사(王朝史)에,
"스이코 여왕과 만조백관들이 '백제옷'을 입었으며 구경하는 사람들이 기뻐했다"

고 나옵니다.(스이코 덴노 - 나무위키)

 

이는 왕족 이하 귀족들이 야마토 안에서는 백제옷을 입었고, 그외는 빤쓰만 입었다는 겁니다.

<일반 백성의 옷>

여름 → 삼베옷

겨울  가죽옷

 

참고로 예전에 백제와 왜 관련의 역·스를 보는데 일본 가서 취재하는 영상에 흥미로운 걸 봤습니다.

야마토 시대 지방 소국의 수장을 마네킹에 옷을 입혀 실물화 했는데, 바로 가죽옷입니다.


현대 일본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린 대부분 야요이인이고, 조몬인은 소수민족이다"
과연 그럴까요?
"아니오, 여러분은 대부분 조몬인의 후예이고, 야요이인의 피가 다수는 섞여 있습니다"
이게 저의 대답입니다.
 
한반도 남부의 야요이인이 열도로 많이 건너 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재 일본인의 대다수를 차지할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럼 조몬인이 대다수인 겁니다.
 
근데 비단옷과 기와집이야 얼마든지 내어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청동기, 철기, 한자의 보급입니다.
금속제련 기술은 곧 농사와 무기를 생산할 수 있기에 함부로 전해줄 수 없습니다.

또한 한자 역시 가르쳐주면 안됩니다.(기본적인 건 가르쳐줬겠죠)
왜냐하면 서책을 읽고 역사를 기록하고 시간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금속제련 기술과 한자 등은 백제 멸망 후, 유민들이 이주·정착하면서 자연스레 지방 소국들에 전해집니다.


※서책을 읽으면 신석기인이 똑똑해지고, 똑똑해지면 주인의 말을 안 들으며, 심하면 주인을 헤칠 수 있습니다.
주인을 헤치면 주인을 헤쳤던 걸 정당화하고 자신이 주인행세를 할 겁니다.
그럼 자신이 주인이라는 걸 후손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역사를 기록할 겁니다.
 
이는 백제와 신라의 역사에서도 증명됩니다.
즉 신라는 삼국 중에서 문화가 가장 뒤쳐졌다고 합니다.
신라 즉 사로국 초중기 역시 위와 같은 이유로 문화가 뒤쳐진 것입니다.
이 백제와 사로국의 관계는 전 글들에서 누차 설명했습니다.
 
시간을 알게 되는 것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조선시대까지도 백성들은 시간을 몰랐습니다.
그저 농사를 위해 나라에서 알려줘야 비로소 알게 됩니다.
"니들이 시간 알아서 뭐하게?"
 
이 모든 건 우민정책으로, 정보와 기술은 정부 즉 지배층(관리자)만 알고 일반 백성은 알려주지 않습니다.(알면 다친다?)
이는 수천년 동안 굳혀져 지금도 일본인의 국민성이 된 듯 합니다.
즉 일본인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정부에서 하라는 대로만 합니다.
당시 피지배층 = 조몬인
현재 일본국민 = 조몬인의 후예
 
하지만 조몬인이 열등하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이들은 소위 말하는 고아시아인으로 만오천년의 장구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세계 最古의 토기가 수만개나 존재하고, 장구한 역사가 말해주듯 야요이인이 쉽게 정벌 못 합니다.
즉 수세기 동안 정벌을 못 해 오와리(나고야현)를 경계로 동쪽은 모두 조몬인의 땅입니다.(7세기 말)
 
백제의 지배층은 이런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아스카시대(6세기말~8세기초)까지도 열도는 미개했던 겁니다.
그나마 불교가 들어와 조금 나아진 정도입니다.
 
즉 백제는 열도의 야마토 지역만 최고수준으로 발전시켰고, 그외의 지역은 전부 미개한 채로 다스렸습니다.
야마토 지역의 절들을 보면 '중국·한국 저리 가라' 입니다.
이는 모두 백제에서 보낸 장인들이 만든 겁니다.
중국계 백제 장인들도 포함임은 물론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조몬인들에게 이런 기술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부려먹기만 함)
 
<도다이지 - 위키백과>
도다이지(일본어: 東とう大だい寺じ)는 일본 나라현 나라시에 위치한 불교 사찰이다. 일본에서 한때 가장 역사가 깊고 강력했던 절들인 남도 7대사의 일원이다. 도다이지의 대불전(大佛殿)은 세계에서 가장 큰 목조 건물로 그 안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청동 대불이 있다. 나라 시대(8세기)에 쇼무 천황이 창건한 절로 현재는 일본 화엄종의 대본산이다.

도다이지 - 위키백과

세계 최대의 목조 건물인 대불전

 

도다이지 - 위키백과

세계 최대 청동 불상인 도다이지 대불


최고수준과 함께 크고 웅장하게 짓습니다.
이는 조몬의 수장들을 초청해 이런 건물을 보여줌으로써 문화적으로 압도하기 위함입니다.(→ 로마제국과 게르마니아)
"니들이 미개한 채로 얼마나 버틸지 두고 보자!"
야마토의 지배층이 아직 복속 안한 지방의 조몬 소국 수장들을 보고 하는 말입니다.
 
이는 아스카시대 말, 오오아마(大海人)가 오와리 동쪽의 수만 대군을 이끌고 수도로 쳐들어가 천황이 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壬申의 난) ★아래 이유 나옴 ↓
오오아마(大海人) - 나카노오에의 친동생
 
<임신의 난, 덴무 천황 - 나무위키>
진신의 난은 일본 고대사 최대의 쟁란이자 미스터리한 사건이다. 거의 벌거숭이 상태로 동국으로 도망간 오오아마 황자가 조정의 정규군을 보유한 선황 덴지 천황의 아들 오오토모 황자를 이긴다는 건 상식적으로 쉽게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 게다가 덴지 천황은 오오아마를 모반죄로 몰아붙이기 위해 양위하겠다는 말까지 했으나 이를 오오아마가 거절해 오오토모 황자에게 계승권이 넘어간 상태였다. 누가 봐도 상식적으로는 오오토모 황자가 이겨야 했다. 하지만 《일본서기》에는 오오아마가 동국으로 도망쳤다는 정보가 오미 조정에 전해진 순간, 조정의 많은 병사들이 무기를 버리고 도주했다고 기록한다.
 
이건 오오아마가 조몬인들을 선동했다고 봐야 합니다.
이에 대한 설명은 다음 글에 이어집니다.
 
즉 그때까지도 오와리국 넘어 동쪽은 조몬인들의 땅이었던 겁니다.
이들 조몬인을 방어하려고 오와리를 경계로 둡니다.
마치 로마제국이 스코틀랜드를 방어하려고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쌓은 것과 같습니다.
 
혹 로마가 게르만족에 의해 망했듯 야마토도 조몬인에 의해 망한 걸까요?
→ 예, 맞습니다.
 
그럼 수백년 동안 이렇게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나눠져 정보와 기술을 차단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조몬인들이 수백년 동안 당하고만 있으라는 법은 없습니다.(그들도 사람입니다!)
꼭 조몬인이 아니더라도 야요이인 중 누군가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궐기할 겁니다.
이들 조몬인들을 선동해서..
아니면 조몬인이 야요이인을 선동해서 말입니다.
 
아니 대체 누가..?
사리사욕에 눈이 먼 야요이인은 바로 나카노오에입니다.(중요인물 1호)
이 야요이인을 선동한 조몬인은 바로 나카토미노 카마타리(中臣鎌足)입니다.(중요인물 2호)
 
<나카토미노 카마타리 - 위키백과>
나카토미노 카마타리(일본어: 中臣 鎌足, 614 ~ 669년)는 아스카 시대(飛鳥時代)의 중신이자 후지와라씨(藤原氏) 선조다.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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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시대와 삼국 초중기 역사를 심층 분석, 탐구합니다. 삼국은 백제, 신라, 가야 입니다. 왜는 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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