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은 왜의 속국인가?(피눈물나는 백제의 역사)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고, 고대사는 특히 기록이 부실해 산산 조각난 퍼즐조각을 짜 맞추는 작업을 해야 어느 정도 그림이 보입니다.
전에도 언급했지만 이 작업은 아다리가 맞지 않으면 이런 주장을 하지도 않습니다.
일본서기를 보면 삼한은 영락없는 왜의 속국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애초에 조몬이 장구한 만오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세계 최초의 수많은 토기를 보유한 미스터리한 종족임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우리 역시 세계 제일의 고인돌 보유국인지라 그것만 해도 자부심을 가질 만합니다.
↑ 출처: 조몬시대에 관하여 – 【공식】세계유산 일본 북부의 조몬 유적군
앞으로도 계속 우리 고대사를 탐구해야 하지만, 이쯤에서 왜와의 관계를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왜의 고대사도 사료가 부족한 실정이라 대부분의 역사가 미스터리입니다.
이 말인즉슨 사관을 두고 역사기록할 정도의 정부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 즉 이런 시대였습니다.
국호를 일본으로 바꾸기 전, 즉 왜가 야마토 왕권으로서 열도를 통일하기 전의 왜는 소국연맹체였습니다.
기껏해야 북큐슈(후쿠오카+사가+오이타)를 통일해서 신라를 공격한 정도의 세력에 불과한 것입니다.
남큐슈는 조몬계로 추정되는 쿠마소(구마모토)와 필리핀계(동남아 오스트로네시안)로 추정되는 하야토(가고시마)가 있었습니다.
왜가 기나이(畿内)를 접수한 야마토(대왜)라면 세력을 규합해 쿠마소(히고)부터 토벌해야 합니다.
↓ 오기칠도
하지만 쿠마소(히고)와 하야토(사츠마)는 일본이 성립(8세기)되기까지 토벌하지 못합니다.
즉 비록 야마토일지언정 어차피 소국연맹체이기 때문에 학계에서 말하는 통일왕국은 아니라고 봅니다.
8세기까지 토벌은 못 하고 야마토에 대한 복속과 배신을 반복한 것 같습니다(일본서기).
이는 삼한일통한 신라도 비슷한 형편이었습니다.
신라는 얼마 못 가서 나라가 망할 지경에 이릅니다.
일본 역시 왕권이 없어져 친족이 군사막부(가마쿠라)를 차린 것은 나라가 망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이 두 나라가 망한 건 후한이 망할 때와 똑같습니다.
환관과 외척 때문이 아니고, 백성의 난 때문도 아닙니다.
바로 '매관매직'을 해서 나라가 망한 것입니다.
근데 '왜'는 중국에서 불렀던 국명이지 왜인 자신들이 불렀던 건 아닙니다.
중국으로 보낸 최초의 조공사신 기록은 후한 광무제 때 노국의 왕이 보낸 것입니다.
<광무제>
중원(中元) 2년(57), 왜의 노국(奴國)이 공물을 바치고 조하(朝賀)하였는데, 사인(使人)은 대부를 자칭하였다. [노국은] 왜국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나라이다. 광무제는 [노국 사자에게] 인수를 하사하였다.
建武中元二年,倭奴國奉貢朝賀,使人自稱大夫,倭國之極南界也。光武賜以印綬。
[출처] 후한서 동이열전(後漢書 東夷列傳) 원문 및 번역|작성자 어이무사10
57년은 辰 다루대왕 30년, 사로국 탈해 1년입니다.
당시 사로국은 소국이라 쳐도 진은 어째서 중국으로 사신을 안 보낸 걸까요?
대대로 한사군과 적대관계였다고 하면 납득은 갑니다만..
기록이 없습니다.
근데 노국이 왜의 가장 남쪽에 있다?
아래 글에서 그 위치를 설명하겠지만, 보통 후쿠오카로 추정합니다.
후쿠오카는 북큐슈인데 어떻게 왜의 최남단이라고 한 걸까요?
이건 전남, 경남, 북큐슈가 모두 왜라고 해야 이에 대한 해답이 나옵니다.
즉 전남은 침미다례(新彌多離)로 알려진 왜이고, 경남의 변진도 역시 원래는 왜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북큐슈 이남은 왜가 아닌 쿠마소, 하야토라는 이민족입니다(위에 설명함).
그럼 57년 당시 혼슈와 시코쿠는 왜가 아닌 조몬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왜는 한의 동남쪽 큰 바다 가운데 있고, [이들은] 산이 많은 섬에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는데, 무릇 100여 나라[國]이다. 무제(武帝)가 조선을 멸망시킨 후에 사역(使驛)을 이용하여 한(漢)과 통한 것이 30여 개 나라이다. [이] 나라들의 [수장(首長)]은 모두 왕(王)을 칭하였는데, 대대로 왕통(王統)이 이어졌다. 그 대왜왕(大倭王)은 야마대국(邪馬臺國)에 있다.
倭在韓東南大海中,依山島為居,凡百餘國。自武帝滅朝鮮,使驛通於漢者三十許國,國皆稱王,世世傳統。其大倭王居邪馬臺國。
[출처] 후한서 동이열전(後漢書 東夷列傳) 원문 및 번역|작성자 어이무사10
↑ 여기서는 우리가 아는 왜의 모습입니다.
이건 각 시기를 혼용해서 기록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즉 원래 왜는 이랬던 겁니다. ↓
학계에서 말하는 '왜'는 한반도 남부의 야요이인이 열도로 도래하여 성립한 정치체라고 합니다.
즉 시기적으로 韓에서 북큐슈로 건너간 상황이 이 윗 사진인 겁니다.(기원 전후)
그럼 한반도 남부의 韓인이 왜인이란 뜻이 됩니다.
우리 역사에서 가야는 왜 사라진 건가요?
반면 일본서기는 왜 가야를 임나(미마나)라 하여 나오는 건가요?
어째서 왜는 신라 초기부터 쳐들어오는 건가요?
※ 참고로 이 왜1과 왜2의 영역은 한반도 남부의 남방형 고인돌의 영역과 일치합니다.
그 주된 영역이 전남 영산강입니다.
※ 고고학적으로 송국리 문화 영역과도 일치합니다.
※ 우리 역사에선 삭제된 전남이 일본서기에만 나옵니다.(침미다례=新彌多離)
이 왜는 삼한 중 신라만 공격했다는 기록만 있지 백제·가야를 공격한 기록이 없습니다(신공 예외).
오히려 백제와 가야와는 친했습니다.
일본서기는 8세기에 편찬된 책이고 당시 통일신라와 서로 잘 났다는 경쟁을 하던 시기였습니다.
고구려, 백제가 멸망 후 왜는 일본이 되어 급속히 발전합니다.
[이] 나라들의 [수장(首長)]은 모두 왕(王)을 칭하였는데, 대대로 왕통(王統)이 이어졌다. 그 대왜왕(大倭王)은 야마대국(邪馬臺國)에 있다.
대왜 즉 야마토의 왕은 야마타이국에 있다고 합니다.
이 대왜는 여기에도 나옵니다.↓
<삼국지 왜전>
조부(세금)를 거두고 거각(저장창고)이 있다. 나라마다 시장이 있어 교역하는데 대왜(大倭)가 이를 감독한다.
收租賦有邸閤國國有市交易有無使大倭監之
여왕국의 북쪽에는 특별히 대솔 한명을 두어 여러 나라들을 검찰하게 하니 그 나라들이 이를 두려워 한다. 항상 이도국을 다스렸다.
自女王國以北特置一大率檢察諸國諸國畏憚之常治伊都國
즉 이 공식이 성립됩니다.
대왜 = 야마토 = 야마타이국 = 왜여왕 비미호
또한 대솔 한 명은 후대의 쇼군을 연상케 합니다.
여왕국의 북쪽, 즉 야마타이국이 야마토(大和)에 있다면 그 북쪽은 야마시로(山城) 즉 지금의 교토입니다.(↑ 오기칠도 참조)
또 이도국은 후쿠오카현 다자이후에 위치하는데 중국사신을 접대하는 곳입니다.
이때부터 그런 역할을 했다니 놀랍습니다.
이 이도국을 야마타이국의 왕이 직접통치한다고 합니다.
암튼 노국은 3세기 삼국지 왜전에도 그대로 나옵니다.
그럼 3세기 삼국지 왜전에 나오는 비미호의 야마타이국은 뭐냐?
먼저 그 위치를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삼국지 왜전에 따르면 이렇습니다.
대마국에서 남쪽으로 바다 건너 천여 리 가면 큰 나라(이키), 남쪽으로 바다 건너 천여 리 가면 말로국(마츠우라), 남동쪽 육로로 5백 리 가면 이도국(후쿠오카, 다자이후), 남동쪽으로 백리를 가면 노국(구루메?)까지는 어느 정도 추정이 가능합니다.
문제는 불미국과 투마국인데 저는 이렇게 봅니다.
방향이 오류라 하면 해결됩니다.
노국(구루메)에서 동쪽으로 백리 가면 불미국(오이타), 남쪽 북동쪽 물길(바닷길)로 20일 가면 투마국(히메지), 다시 남쪽 남동쪽 물길로 10일, 묻길로 20일 가면 야마타이국(나라)입니다.
여기서 잘 나가다 거의 끝에 가서 방향이 틀린 이유가, '배 타고 가다 지쳐서' 라고 봅니다.
그리고 중간에 묻길로 20일이나 걸리는 이유는, '오사카에서 구경할 게 많아서' 입니다.ㅡㅡ;
이를 다시 위 오기칠도에 대입하면 이렇습니다.
말로국(히젠) → 이도국(치쿠젠) → 노국(치쿠고) → 불미국(부젠) → 투마국(하리마) → 야마타이국(야마토)
삼국지 왜전에는 이 야마타이국에서 서쪽으로 노국까지 20여 개국이 열거된 반면 동쪽(노랑, 초록, 주황)으로는 더 이상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즉 아직 정벌 전의 조몬계 소국들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문맥상으로는 당시 대부분의 조몬계 소국들은 정벌되지 않았던 듯합니다.(기원 전후)
일본은 아직까지도 오사카를 중심으로 관서와 관동으로 나뉩니다.
지방색이 강하고 텃세도 심하다고 합니다.
간토, 도호쿠 지방의 주민들은 중앙인 긴키 지역 주민들에게 '아즈마에비스'로 불렸다. 에비스는 하야토와 마찬가지로 일본 열도의 옛 소수민족의 하나였던 에미시. - 나무위키, 하야토 주 4 -
간토 = 관동
도호쿠 = 데와, 무쓰
긴키 = 기나이
에미시 = 조몬인
☆ 그럼 비미호는 누구인가?
삼국지 왜전을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그 나라 또한 본래 남자가 왕으로 7-80년을 이어오다 왜국에 난이 일어 여러 해에 걸쳐 공벌하였다. 이에 한 여인을 왕으로 함께 세웠는데(공립) 이름은 비미호라 한다.
其國本亦以男子爲王, 住七八十年, 倭國亂, 相攻伐歷年, 乃共立一女子爲王, 名曰卑彌呼
출처: 삼국지 위지 동이전 왜인전 원문과 독음 그리고 해석 (三國志 魏志 東夷傳 倭人傳) : 네이버 블로그
대란이 일어 몇 년에 걸쳐 서로 공격했는데, 한 여인을 왕으로 공립 했더니 잠잠해졌다?
마치 백제대왕이 왕족을 보내기 전까지는 서로 싸우다 비미호가 가니까 왕으로 공립해 잠잠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 비미호가 누구인지 이에 대한 명쾌한 설명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
<아달라>
20년(서기 173) 여름 5월, 왜(倭)의 여왕 비미호(卑彌乎)가 사신을 보내 예방하였다.
二十年 夏五月 倭女王卑彌乎遣使來聘
신라 아달라 20년이면 백제는 초고 8년인데, 초고 6년(171)서부터 20년(185)까지 기록삭제되어 없습니다.
아달라조도 질세라 아달라 22년(175)부터 30년(183)까지 기록삭제입니다.
또한 아달라는 백제와 안 친한 신라임금으로 보입니다.
뭘 그리 숨겨야 돼서 170년 초부터 180년 중반까지 통째로 삭제했을까요?
이 10여 년 동안 한반도에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요?
당시 중국 170~180년대는 후한 영제의 시대로 환관들이 판을 치던 때였습니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184년에는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습니다.
그럼 한사군에도 영향을 미쳐 부정부패가 일어나 한반도의 정치적 위계질서가 깨진 시대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즉 중국과 같이 군웅할거의 시대였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말갈의 일개 부족이 쳐들어와 구태가 진왕으로 즉위한 역성쿠데타가 일어났고(구태=초고 1,2 참고), 사로국도 아달라라는 유목민 부족장이 임금이 됐으며, 열도의 왜 역시 왕이 없어 혼란기였던 것입니다.
이런 시국에 비미호가 왜왕이 된 것인데, 비미호가 즉위한 년도는?
173년 5월 전에 즉위해 5월에 신라에 사신을 보낸 것입니다.
247년까지 살았던 기록으로 보아 장수했습니다.(삼국지 왜전)
173년에 20세라 하면, 247 - 153 = 94세에 죽었습니다.
근데 이 왜 여왕 비미호와 그 남쪽에 있다는 구노국 남왕의 이름이 비미궁호입니다.
즉 卑彌가 성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마한 54국 중에 비미국(卑彌國)이 있습니다.
우연의 일치래도 이런 우연이 또 있을까요?
혹 辰왕이 야마타이국에 비미호를, 구노국에 비미궁호를 왕으로 임명한 게 아닐까요?
비미호가 왕이 되기 전, 야마타이국에는 원래 남왕이 7~80년 있었다 합니다.
그럼 대충 173 - 75 하면 98년입니다.
이 때는 辰 기루대왕, 사로국 파사 때입니다.
왜의 침입은 전혀 없던 때입니다.
<삼국지 한전>
그중에서 12國은 辰王에게 臣屬되어 있다.
辰王은 (그 12국의 왕을) 항상 馬韓사람으로 王을 삼아 대대로 世襲하였으며, 辰王이 (그들을) 자립해서 王이 되지 못하게 하였다.
魏略: 그들은 옮겨온 사람들이 분명하기 때문에 馬韓의 제재를 받는 것이다.
여기에도 이 담로제의 공식을 적용해서 풀어야 비미호가 즉위하게 된 배경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辰왕이 마한 소국 중 하나인 비미국의 왕족을 바다 건너 왜의 야마타이국 왕으로 임명해 보낸 것입니다.
위에 설명한 대로 이 야마타이국은 열도의 왜를 다스리는 대왜입니다.
또한 위에 말한 대솔 역시 辰에서 보낸 감시자였던 걸로 보입니다.
그리고 야마토는 원래 국명이 아니라 辰(백제)이 왜를 통솔하는 대왜를 이 야마타이국에 둔 것인데, 후대로 가면서 야마토로 바뀌어 국명으로 와전된 것입니다.
<대왜의 뜻 두가지 혼용>
원래의 뜻 - 대왜 = 辰(백제)의 관직, 왜 대왕
후대에 변질된 뜻 - 대왜 = 야마타이국 = 야마토(大和)
<대왜, 대솔의 역할>
대왜 - 辰(백제)의 관직, 왜 대왕 → 왜를 통솔
대솔 - 辰(백제)의 관직, 왜 검찰(후한의 주자사 역할) → 왜를 감시
<대왜, 대솔의 왜국내 역사적 흐름>
辰(백제)에서 대왜, 대솔 파견 → 야마타이국(나라)에 주재 → 후대에 일본국 성립 → 오기칠도(행정구역)를 만들며 야마타이국을 야마토(大和)로 개명 → 대왜를 야마토로 부르고 역사조작 시작 → 일본서기 편찬하며 신무 이하의 일본 초기 역사날조 → 대왜가 천황으로 변신 → 천황 왕권 소실 → 후대 미나모토 요리토모(가마쿠라 막부 초대쇼군) 대솔을 모방해 막부 설립 → 대솔이 쇼군으로 변신
이 대왜가 부재했기 때문에 왜국대란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참고로 젊은 미나모토 요리토모(40세 전후)가 무슨 수로 막부라는 새로운 정치체제를 만들 수 있었겠습니까.
이런 역사적인 자료와 선대의 대솔이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그대로 모방해 창조할 수 있었던 겁니다.
한편 젊은 나이에 비미국에서 바다 건너 야마타이국으로 간 비미호는 혼인도 못 하고 하는 일 없이 궁 안에서만 평생 살았습니다.(삼국지 왜전)
그저 상징적인 존재로 간 것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이 피눈물 나는 역사인 것입니다.
<삼국지 왜전>
남자를 왕으로 세웠는데 나라 사람들이 불복하여 서로 죽였고 이 때 죽은 자가 천여 명이었다.
다시 비미호의 종녀인 일여를 세워 13세의 나이로 왕으로 즉위하자 나라 안이 마침내 안정되었다.
更立男王國中不服更相誅殺當時殺千餘人, 復立卑彌呼宗女壹與年十三爲王國中遂定
삼국지 위지 동이전 왜인전 원문과 독음 그리고 해석 (三國志 魏志 東夷傳 倭人傳) : 네이버 블로그
↑ 비미호가 죽고 그 다음 남왕이 辰에서 파견한 대왜가 아니었기에 다시 난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진에서 비미호의 친족이 파견되니 난이 평정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일여가 왜국에 진작에 있었다면 왜왕으로 세웠을 테지만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이해됩니다.
이를 위해 일여가 13세의 어린 나이에 군사들의 호위를 받고 바다 건너 야마타이국까지 간다고 하니 이런 것이 피눈물 나는 겁니다.
이건 혁거세, 사마(무령왕)의 상황과 같습니다.(眞혁거세, 무령 참고)
이에 대한 부작용(?)을 인식해서 진을 이은 백제는, 호족의 친족 대신에 대왕의 친족을 대왜로 임명하고 아울러 대솔을 없애 실질적인 권한을 준 것입니다.
이것이 야마토 왕권입니다.
이때 야마토 왕권의 권위를 위해 백제대왕이 하사한 삼종신기는 왜왕이 대대로 다음 왕이 즉위할 때 물려줍니다.(저의 칠지도 해석 참고)
이런 체제가 백제 멸망 즉 일본이 성립되기 직전까지 유지됐습니다.
이 역사적 비밀이 담겨있는 백제 초기 역사, 즉 기루, 다루, 개루의 삼루대왕의 역사기록이 신라에 의해 삭제된 것입니다.
근데 이 백제의 정치시스템을 갈아엎은 신라와 일본은 얼마 못 가서 나라가 망할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즉 중앙집권 체제는 매관매직하기 쉬운 약점이 있던 것입니다.
그래서 후대의 고려 왕건과 미나모토 요리토모는 이를 거울삼아 다시 백제의 담로제를 도입한 것입니다.
- 辰(담로제) → 백제(담로제) → 백제 멸망 → 통일신라(중앙집권화) → 통일신라 멸망 → 고려(고려식 봉건제)
- 왜(辰담로제) → 야마토(백제담로제) → 백제 멸망 → 일본(중앙집권화) → 왕권 소실 → 가마쿠라 막부(일본식 봉건제)
※ 통일신라의 중앙집권 관직은 아래에 상세히 나옵니다.
삼국사기 제38권 잡지 제7, 직관 상 신라 중앙관부 1~4
삼국사기 제39권 잡지 제8, 직관 중 신라 궁정관부 1~2
삼국사기 제40권 잡지 제9, 직관 하 신라 무관 1~3, 외관
※ 일본의 중앙집권 관직 역시 상세히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왕건은 각 지방의 호족들의 딸과 혼인합니다.
이게 고려식 담로제로 볼 수 있습니다.
그 후 4대 광종은 매관매직을 막을 수 있는 과거제를 도입해 다시 중앙집권화를 이뤄냅니다.
이제 결론입니다.
辰을 이은 백제 근초고왕이 목라근자를 정이대장군으로 임명해 한반도 남부의 왜를 정벌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즉 백제대왕의 명을 안 듣는 전남, 경남의 왜 소국들을 정벌한 것입니다.(근초고 3~20년 기록삭제)
그 후 이 왜의 세력을 규합해 역시 말을 안 듣는 신라를 정벌합니다.(진사대왕 시기)
하지만 신라 내물은 왕자 실성을 고구려에 볼모로 보내 원군을 요청합니다.
이 실성이 담덕을 만나 백제를 공략하게 된 것입니다.(실성1,2 참고)
辰왕이 비미국의 왕족 비미호를 야마타이국에 보내 왕(대왜)으로 임명하는 것은, 후대의 동성과 무령 대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동성, 무령, 인물화상경 참고)
다만 백제는 대왕의 친족, 즉 대왕의 친동생이나 아들을 열도의 대왜(야마토)로 보내 왜왕으로 임명한 것입니다.(저의 칠지도 해석 참고)
이게 언뜻 안 믿기나요?
그럼 사마(무령왕)가 열도로 가는 섬에서 태어난 것은 뭐며 곤지 외 왕자들이 백제에서 열도를 제 집처럼 드나들었던 이유는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참고로 곤지는 일본에서 신이자 왕으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진실이 이러할진대 삼한이 왜의 속국이라니요?
삼한이 왜의 속국이란 건, 백제가 왜의 속국이란 말과 같은 것입니다.
정녕 백제가 왜의 속국인가요?
↓
↓
↓
출처: 백제금동대향로,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