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신라, 가야, 왜

왜왕武는 동성왕이다?(왜5왕 시리즈 1탄)

scale700 2024. 12. 8. 08:46

 

먼저 왜왕 무가 중국황실에 국서를 보낸 해가 478년입니다.

근데 나무위키 왜5왕을 보면 제와 흥이 죽은 해가 477년이라고 합니다.

 

이 제와 흥이 무의 부형이라고 국서에 나오니 백제와 왜의 기록에 477년에 죽은 왕이 있는지 보면, 곤지와 문주가 딱 477년에 죽었습니다.

여기서 벌써 반 먹고 들어갑니다.

 

근데 사서에 문주는 개로의 아들(삼국사기)로 나오고 동생(일본서기)이라고도 나옵니다. 
동생이라고 하면 나이가 맞지 않으니 개로의 아들로 봐야 합니다.

 

즉 개로가 즉위할 때(455), 문주가 도와서 상좌평이 되었다고 하니 문주는 적어도 435년생 전후로 봐야 합니다.

 

또 곤지와 문주는 삼촌조카 사이니 적어도 20살 전후의 나이차가 나야 합니다.

그럼 곤지와 문주를 부형이라고 부를 만한 인물이 동성과 무령 두 명입니다.

 

근데 왜왕의 작위를 받은 478년에 동성은 열도에 있었음은 분명하고 무령은 백제에 있었다고 하면, 동성이 바로 왜왕 무가 됩니다.

 

그럼 이를 바탕으로 이들의 행적을 보면 이렇습니다.

  • 濟 - 곤지, 415년생
    451년 열도에서 왜왕 작위받음
    458년 백제에서 좌현왕 작위받음
    461년 열도행
    477년 백제행, 62세 백제에서 사망
  • 興 - 문주, 왜왕세자 435년생?
    462년 열도에서 왜왕 작위받음
    475년 백제왕 즉위
    477년 42세? 백제에서 사망
  • 武 - 동성, 443년생
    478년 열도에서 왜왕 작위받음
    479년 백제왕 즉위
    501년 58세 백제에서 사망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백제와 왜의 관계를 푸는 열쇠가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증거는 위에 설명한 대로입니다.

 

즉 위의 행적이 사실이라면 곤지가 451년에 열도에 있었고(당시 36살), 거기서 왜왕 작위를 받았으며 백제왕의 명으로 백제와 왜로 오고 가고 했습니다.

 

문주는 462년 당시 27살로 열도에서 왜왕 작위를 받았고, 이 당시 개로 1~13년까지 삭제되어 기록이 없습니다.

 

동성은 478년 당시 35살로 열도에서 왜왕 작위를 받았고, 이때 중국에 보낸 유명한 국서, 이건 부형을 모두 갑자기 잃어 피눈물로 중국황제에게 호소한 것이었습니다.

 

근데 이들이 죽을 무렵은 모두 백제에 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저의 결론은 백제왕은 대왕이고 백제가 본국이며, 왜왕은 백제왕의 동생 혹은 아들로 임명되는 후왕의 분국입니다.

 

또 다른 증거는 무령왕의 인물화상경에 나오는 48자의 명문입니다.

 

<나의 해석>

미년(479년) 8월 10일 대왕년에, xx왕(동성왕)이 오사카궁에 있을 때, 사마가 (동성왕의) 장수를 염원하다. 귀중비직과 예인 금주리 2인 등을 파견해 좋은 구리 200한으로 이 거울을 만듦.
未年八月日十大王年?(?)弟王在意柴沙加宮時斯麻念長寿(?)遣開中費直穢人今州利二人?取白上同二百旱作此竟矣

 

또 칠지도의 명문입니다.
근데 기존의 해석이 잘못 됐습니다.

 

<기존 해석>
지금까지 이러한 칼은 없었는데, 백제 왕세자 기생성음이 일부러 왜왕 지(旨)를 위해 만들었으니 후세에 전하여 보이라.
先世以來未有此刀百濟王世子奇生聖音故爲倭王旨造傳示後世

 

이게 아닙니다.

 

<나의 해석>
지금까지 이러한 칼은 없었는데, 백제왕은 대대로 혈통이 고귀하니 왜왕이다. 뜻을 받들어 후세에 그것을 전하라.
先世以來未有此刀百濟王世承(マ)奇生聖音故爲倭王旨造傳之後世 (또는 傳永後世 후세에 영원히 전하라)

 

기생성음은 “혈통이 고귀한"의 뜻이고, 그것(之)이란 "백제왕이 곧 왜왕이니 이 칼이 그 증표"라는 뜻입니다.

 

백제왕 대신 기존의 百濟王世子奇生聖音故爲倭王 으로 해도 문맥은 비슷하여 "백제왕세자는 혈통이 고귀하니 왜왕에 임명한다(즉 왜왕이다)"란 뜻입니다.
오히려 이게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여기서 몇 가지 의문점들이 생깁니다.

 

첫째, 어째서 백제 따로 왜 따로 중국에 국서를 보내 작위를 요구했냐입니다.

 

위치상 백제는 북위, 왜는 유송에 보냈고 내용은 결국 고구려를 칠 테니 도와달라입니다.
양동작전으로 북위나 유송 한 곳만 도와줘도 감사한 거죠.

 

둘째, 왜는 어째서 백제의 작위를 요구했냐입니다.

 

어차피 왜왕이 곧 백제로 가서 백제왕으로 즉위하니 이 참에 한꺼번에 요구한 것입니다.
주면 고맙고 안 줘도 그만인 거죠.

 

기록을 보면 결국 중국이 군사원조를 거부하니 이제 사신을 안 보냅니다.
보낼 이유가 없으니까요.

세 번째 의문점은 2탄으로 이어집니다.